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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2 <워낭소리> 그들이 사는 세상
  2. 2008.10.08 <13th PIFF> 1박 3일 방문기
2009.01.22 10:29

<워낭소리> 그들이 사는 세상


<워낭소리> 그들이 사는 세상


Korea; 2008; 78mm; HD; Documentary
Director: 이충렬
Cast: 최원균, 이삼순, 늙은소, 젊은소, 어린소

 
추운 계절이다. 예년 겨울에 비하면 그렇게 추운 날씨도 아니다. 근데 이래저래 돌아가는 상황들이 몸와 마음을 더 움츠려들게 만든다. 뉴스와 신문을 보면서 내뱉는 게 겨울날 입김같지는 않다.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세상 걱정하게 생겼냐고 스스로를 꾸짖어 보지만 말에 진심이 섞이지 않는다. 뭔가 답답하고 꽉 막힌 마음을 한 번에 녹여줄만한 그런 것이 생각난다. 손과 발이 얼어붙고 얼굴이 베일 것 같은 겨울, 포장마차에서 먹는 뜨거운 오뎅국물같은 그런 거 말이다. 문득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표를 구하지 못해 매표소 앞을 얼쩡거리다 "남는 표 아무거나 하나 주세요." 하고 본 영화였다. 아는 건 표에 적힌 제목 뿐이었다. 주인공이 누군지, 무슨 내용인지, 장르가 무엇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표를 받자마자 시간에 쫓겨 상영관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상영관 앞에서 나눠주는 영화제목이 적힌 손수권을 받았다. 그것도 이유를 몰랐다. 영화가 끝날 때쯤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상영관 곳곳에서 손수권이 담긴 비닐팩을 뜯는 소리가 들렸다. 곧 이어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워낭소리>... 워낭소리는 그렇게 우연처럼 만났다. 얼마 전, 영화가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축년, 소의 해인만큼 독립영화치고는 꽤 여러 곳의 매체에서 소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개봉과 함께 최고의 관객점유율을 기록하며 '빵' 터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뿌듯했다. '그래도 내가 우연치고는 좋은 영화 골랐구나.' 정도의 만족감이었다. 왜 뜨거운 오뎅국물 어쩌구저쩌구 하다가 워낭소리가 생각났는지 모르지만, 그 때의 기억이 이 영화라면 그나마 허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혼자 보는 영화가 익숙해졌지만 왠지 그러기 싫어 친구들을 불러냈다. 그냥 영화 끝나고 돌아가면 더 허전할 것 같았다. 있는대로 늘어지게 수다라도 한 판 떨어야지만 듣기 싫은 소리만 해대는 뉴스와 신문을 피할 수 있다.



<워낭소리>는 70대 노부부와 그들과 30년이 넘게 살아온 늙은 소의 마지막 1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영화의 처음, 절에 가기 위해 겨울산을 오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걸음이 힘겹다. "소가 죽으니까 생각이 나니껴?' 할머니의 물음에 절을 마친 할아버지가 '그럼!'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할아버지의 손에 들린 낡은 워낭도 주인을 그리워하는 듯 겨울공기만큼이나 맑은 소리를 낸다. 그리고 1년 전으로 돌아가 봄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집도 여느 시골집처럼 1년 농사를 시작하는 준비에 정신이 없다. 그 곁에 그들만큼이나 노한 소가 있다. 소가 보통 15년을 산다는데 이 소 나이가 사람으로 치면 불혹이다. 듬성듬성 빠진 털에 윤기가 없고, 뼈가 앙상하게 들어난 겉모습은 소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적지 않은 나이를 짐작하게 한다. 2~3년 등 따시고 배부르게 지내다 뼈와 살이 발라져 시장에 팔리는 소들에 비하면 천수를 누리는 셈이다. 근데 더 들여다보면 이 소의 팔자가 부러워할만큼 편한 것도 아니다. 할아버지 외양간에 처음 들어선 순간부터 소는 할아버지의 손이고, 발이였다. 고집스럽게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 때문에 지금까지 쉬는 날 없이 산으로, 들로, 논으로, 밭으로 쫓아다니며 일을 했다. 할머니 말처럼 말을 못해서 그렇지 일을 나갈 때마다 엄청 욕을 해댈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소는 묵묵히 할아버지를 태운 리어카를 끌고 평생을 오가던 길을 간다. 수의사가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마지막까지 소는 봄에는 못자리를 만들고, 가을엔 벼를 실고, 겨울엔 나무를 해나를 것이다.

그 만큼 할아버지도 소에게 끔찍하다. 농약 좀 치자는 할머니의 지청구에도 그러면 소가 먹을 게 없다고 단칼에 자른다. 사료 사다 먹이면 편할 것을 엄청 먹어대는 소를 위해 새벽처럼 일어나 쇠죽을 만들고, 땡볕에 일해도 할머니 배고픈 것보다 소가 배 곯는 게 걱정이다. 다리가 불편하고, 두통에 괴로워도 워낭소리가 들리면 소한테 뭔 일있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소 한 마리로 농사지어 9남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냈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애쓰는 게 짐작 못할 바도 아니다. 죽어나는 건 할머니 뿐이다. 매일 아프다고 골골거리면서 일하러 다니는 것도 성가시고, 나이 먹고 편하게 농사질 수도 있는데 기계, 농약 다 마다하는 것도 못마땅하다. 더구나 할아버지가 허구한 날 소만 보고 있으니 울화는 더 치민다. 할머니 말처럼 '싱싱한 남자' 못 만난 게 한 일수도 있겠다. 그래도 말 뿐이지 마음은 그렇지 않다. 할머니는 영감 없이 혼자 살 게 벌써 걱정이다. 자식 눈칫법 먹고는 못 산다며, 따라 죽겠다는 말이 일일드라마에서 좋아 못 죽는 커플들의 빈 말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외양간을 지키는 소한테도 그렇다. 30년 넘게 고생시킨 게 미안할 뿐이다. '너나 나나 영감 잘못 만나 고생이 많다.' 는 말처럼 어찌 보면 소는 할머니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그리고 이름도 붙여주지 않은 소, 이렇게 셋은 30년이 넘게 그렇게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지내왔을 것이다. 마지막 1년도 다르지 않다. 셋은 마지막까지 평소처럼 하루하루를 보낸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하나... 외양간에 새주인이 들어왔다. 근데 새끼 낳고, 먹기만 잘 하지 일하는데는 영 젬병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늙은소한테만 정이 간다.

   
겨울이 되면서 소의 기력은 바닥을 드러낸다. 그래도 할머니 말처럼 추운 겨울 노인네들 춥지 않도록 마당을 꽉차게 나무를 해놓고 소는 눈 감을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는 누워서 일어날지 모르는 소를 두고 '에이씨, 에이씨'를 반복하면서도 연신 눈을 훔친다. 알았으면서도 아직 오랜 친구를 보낼 준비가 안 된 듯 보인다. 그런 할아버지를 아는 듯 모르는 듯 소는 밭은 숨을 내쉰다. 평생을 달고 있던 코뚜레와 워낭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소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더 이상 일어설 기력도 없는 자신을 보채며 연신 눈을 훔치는 할아버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생의 벗을 잃은 건 할아버지와 할머니 뿐이 아니었으리라.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위해 일을 하면서도 노부부만 남기고 가는 길이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생 소가 일을 하러 다닌 밭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해준다. 마치 그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을 위해 일만 해준 친구에 대한 예의이고, 고마움의 표시인 듯 말이다. <워낭소리>가 무엇보다 따뜻했던 이유는 이렇게 떠나는 자와 떠나보내는 자가 서로에 대해 전하는 배려와 예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워낭소리>는 한 마디로 따뜻하다. 감독이 카메라를 잡고 있는 손도 따뜻하고, 카메라의 시선도 따뜻하고, 소에 대한 할아버지의 마음도 따뜻하고, 할아버지에 대한 할머니의 푸념도 따뜻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살아있음이 따뜻하다. 아마도 이런 따뜻함 때문에 영화가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경상도 봉화의 한 마을에서 전해지는 그 온도는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소> 그들이 사는 세상의 '온도'가 무엇보다 그리웠다. 그리고 그들의 예의와 배려가 부러웠다. 추운 겨울 사람들이 편한 보일러 대신 촛불을 들었고, 공권력은 다시 그들을 향해 살수차를 뿌렸다. 2009년의 시작에서 2008년의 그 뜨거움이 재현될 징후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대의정치의 정당성을 스스로 자진납세한 국회부터 출발선을 끊었고, '법'을 가장한 폭력으로 무장한 경찰이 가속도를 붙였다. 앞으로 2월 임시국회와 청와대의 인사, 경제대책들이 얼마나 추진력을 달아줄지가 관건이다.

문제는 소통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2008년 출범과 함께 새정부는 '소통의 정부'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그 약속이 민망하기까지 하다. 과연 배려와 예의가 없는 관계에서 소통이 이뤄질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상대를 위한 따뜻한 온도 없이 이해가 가능한지 묻고 싶다. '법'은 지켜져야 하지만 그것이 유지해야 할 적정 온도와 조건들이 있다. 그것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법은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들 뿐이다.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 할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린다. 지금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획기적인 정책, 눈부신 성장, 제 2의 기적 이런 거시적인 것이 아니다. 단지 평범한 우리들에 대한 높은 분들의 '예의'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따뜻한 온도를 가진 배려다.

노희경이 쓰고, 표민수가 찍은 KBS의 <그들이 사는 세상>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우리들이 사는 세상'을 담기 위해 현장을 뛰어 다닌다. 또 그것이 드라마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고 믿는다. 하지만 막상 이 드라마가 끝날 때쯤 역으로 우리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난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가 사는 세상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된다. 그리고 그 온도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된다. 어렵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난 이것이 사람들이 다른 것도 아닌 '촛불'을 들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워낭소리>의 훈훈함 때문이었는지 엉겨붙은 마음이 좀 풀린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약간의 길이 생겼다는 느낌에 마음이 놓이는 것 같다. 가끔은 책에서도 찾지 못하는 길을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얻기도 한다.


P.S. <스튜디오 느림보>는 이제 그 만의 톡특한 스타일의 다큐멘터리 제작 노하우를 가진 제작사가 된 것 같다. (배급에 있어서도 그렇다.) 독이 될 수도 있지만, 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난 제작사의 전작인 <우리 학교>를 보면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송환>이라는 입에 거품물 정도의 마스터피스를 본 직후에 봐서 그런지 몰라도 난 아이들을 향하는 카메라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꼭 필요한 시도였고, 좋은 의도를 가진 좋은 영화임은 확실했지만 감정선을 건드려 뭔가 강요하는 듯한 화면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난 보다 칼 같은 카메라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워낭소리>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워낭소리>는 극장판이라기보다 인간극장류의 TV다큐의 분위기가 더 많이 난다.) 하지만 <우리학교>와 <워낭소리>를 묶어서 보면 약간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스로 너무 장르의 외연을 좁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나의 장르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변주 역시 영화를 보는 재미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스튜디오 느림보>가 꾸준히 자신들만의 작품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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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8 18:30

<13th PIFF> 1박 3일 방문기

<13th PIFF> 1박 3일 방문기

<3일-내려가기>

개천절인 금요일 밤 11시 서울역에서 무궁화호에 올랐다. 가방에 노트북과 티셔츠와 가디건 한 장씩, 속옷과 양말만 대충 챙겨넣고 도망가듯 밤기차를 탔다. 5시간이 넘는 열차 여행은 4시 20분 목적지 부산역에서 멈췄다. "이제 햄들어서 무궁화 못 타겠다."고 투덜대며 열차를 빠져나왔다. 새벽임에도 열차는 꽤 많은 사람들을 토해냈고, 역사 안에도 꽤 사람들로 북적였다. "모두 나처럼 영화제를 찾은 사람들인가?"라는 생각에 3년 만에 부산영화제를 다시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물론 떨림과 두근거림과 함께.

친구와 부산행을 갑자기 정하고 내려왔기 때문에 예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티켓 예매는 물론 숙소까지. 내려오기 전, 잠깐 동안 해운대 근처의 호텔, 모텔에 전화를 했지만 "오늘은 해운대에서 방 구하기 힘들건데요."라는 말만 계속 들어야했다. "남포동은 그래도 하룻밤 묵을 곳이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택시를 잡았지만 그곳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 한 시간 쯤을 헤맨 뒤에야 자갈치 시장의 짠 바다냄새가 고스란히 올라오는 한 모텔에서 겨우 방을 찾을 수 있었다. 긴 열차 여행과 방 잡으러 돌아다녔던 게 화근이었는지 친구와 그대로 쓰러져 점심을 훌쩍 넘겨 모텔을 기어나왔다.
 
<4일-돌아다니기>

야속하게도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남포동을 한 바퀴 훑어보고 해운대로 곧장 자리를 옮겼다. 예전에는 부산영화제하면 남포동이었는데 이제는 어쩐지 이전만큼 분위기가 나지 않는 듯했다. "썰렁하네." 기념품 부스에서 그나마 잠시 머무른 뒤 설렁탕 한 그릇을 허겁지겁 헤치우고 해운대에서 5시와 8시 영화를 골랐다. 어차피 티켓 남는 영화 아무거나(?) 보자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조바심은 없었는데 해운대 메가박스 매표소 앞에 세워진 상황판에 거의 모든 영화가 매진된 걸 보고서야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기왕 영화제 왔으니 그래도 영화 몇 편은 봐야지 않겠나. 다행히 티켓 교환 부스 앞을 서성이다 5시 영화 <워낭소리>와 8시 영화 <수치 disgrace> 티켓을 구했다. 힘겹게 구한 표를 들고 친구와 "우리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라며 쓰게 웃고는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국제영화제인데 영화들이야 검증됐겠지... "라고 자위하며.

<워낭소리>는 노부부와 그들이 키우는 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낸 인간극장류의 다큐멘터리다. 시작 전에 상영관 앞에서 손수건을 나눠줬는데 끝날 때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사의 마케팅이 적중한 듯.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된 GV에서도 노부부와 영화 제작에 대해서 질문들이 쏟아졌다. 누군가 너무 감정이입이 됐다고 지적을 했는데 꼭 다큐멘터리가 건조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멘터리도 영화의 한 장르인데 굳이 그 외연을 한정지을 필요가 있을까? 아무튼 다음 영화가 남포동이었기 때문에 GV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거의 1시간을 걸려 아슬아슬하게 남포동 대영극장에 들어갔다.

다음 영화는 <수치 Disgrace>.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존 말코비치가 나왔다. "이 영화가 범상치 않겠다." 싶었는데 역시였다. 정말 많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포스트식민주의와 신식민주의에 대한 정치적 함의가 느껴졌고, 아버지(존 말코비치)의 성적 메타포가 강한 어떤 메시지들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고 쏟아졌다. 극장을 나와서도 한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나 이 영화 잘 모르겠다."는 말로 매듭졌다. 올라와서 영화를 검색해 보고 알았는데 존 쿳시의 소설 추락(disgrace)를 원작으로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부터 애매모호하던 메시지들이 형체를 갖고 잡히기 시작했다.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군." 존 쿳시의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밖에 보지 못했는데 왠지 존 말코비치는 최적의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따로 포스팅을 할 계획)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온 친구와 다시 만나 모텔 옆 자갈치 시장에서 꼼장어를 먹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음식은 아닌데 부산에 왔으면 꼭 먹어야 한다는 친구의 성화에 무작정 테이블에 앉았다. 그래도 바닷바람 맞으면서 먹는 음식이라는게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힘드니 분위기는 그럭저럭 좋았다. 손님을 게의치 않고 맛깔나는(?) 욕을 섞어가며 열심히 싸웠던 1번과 8번 가게 아주머니의 타이틀 매치를 보면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숙소로 돌아왔다. TV에서 최진실의 삼우제를 보고 친구와 그녀에 대한 몇 마디를 나눴더니 벌써 2시가 가까웠다. 자야 한다면 침대에 누웠는데 친구가 예상에 없던 <연애불변의 법칙-커플 브레이킹>에 빠져 5시에야 잠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11시 타임 영화봐야 하는데 말이다.

<5일-올라오기>

당연히 아침 11시 영화를 패스했다. 둘다 침대에 등짝이 달라붙어 버렸다. 그래도 오후에 서울로 짐 싸들고 올라와야 하니 2시 영화는 꼭 보겠다는 생각으로 모텔을 힘겹게 빠져나왔다. 예상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제길. 편의점에서 우산 2개를 사고 남포동으로 나왔다. 그래도 사람들이 북적북적 우연히 아는 부부(?)를 만나 남포동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회국수 집에서 점심 요기를 대충하고 부산극장으로 갔다. 분명히 <순회상영>인 줄 알았는데 표를 보니 <이방인>이었다.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지. 뭐 아무거나 봐도 상관 없었지만 부산극장 2관과 3관이 붙어 있어 살짝 3관으로 들어가 인기작 중 하나였던 <신은 없다>를 봤다. 매진이라더니 제법 빈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신은 없다>는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허구성을 유머와 위트를 섞어 비꼬는 다큐멘터리였다. 중간중간 외국인들만 크게 웃는 바람에 덩달아 따라 웃긴 했지만 이런 문제에 있어서도 쿨(?)하게 넘기는 그들의 태도가 부럽긴 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국내에서는 절대 상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둑 관람하길 잘한 듯. 원래 이 영화를 보고 서울로 올라올 예정이었으나 못내 뭔가 아쉬워 친구와 한 편 더 보기로 했다. 어렵게 티켓교환소에서 구한 영화는 스페인과 칠레의 합작 영화 <좋은 인생>. 칠레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다수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전개되는 영화였다. 각자 사연 많은 사람들이 서로서로 무심한 듯 살아가지만 결국 네트워킹 되어 있다는 소소한 진리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영화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영화가 끝나고 나니 집에 가는 일이 급해졌다. 기념부스에서 기념품 몇 개를 사고 노포동 고속터미널로 향했다. 내려올 때 무궁화에 너무 시달려 갈 때는 우등타고 편하게 가자 했지만 하늘은 그런 호사를 허락하지도 않았다. 매진된 우등을 피해 8시 15분 일반 버스를 타고 새로 놓인 부산-대구 고속도로를 탔다. 피곤했는지 타자마자 한 시간을 미친듯이 자고 휴게소에 들러 군것질거리들로 요기를 했다. 다시 출발한 버스 안에서는 거의 끝나가는 여행이 아쉬워 친구와 내내 수다를 떨었다. 이런저런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주고 받으며 12시 반이 가까운 시간에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줄지어 있는 택시를 같이 타고 친구를 내려놓고 집에 도착하니 1시가 조금 넘었다. 한 숨 한 번 길게 내뱉고 내일부터 또 어떻게 일주일을 시작하나 투덜대며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여독풀기>

다음 날부터 미친듯이 수업 준비를 하면서 중간중간 1박 3일 짧은 여행을 떠올렸다. 즐겁고 유쾌했지만 왠지 예전에 느꼈던 감동들은 없었던 것 같다. 남포동 거리를 빼곡히 채웠던 영화 부스들이 사라졌고, 그 앞에서 기념품을 받기 위해 줄지어 있던 사람들의 부산스러움이 없었다. 부스들은 모두 해운대로 이동했지만 영화와 상관 없는 기업 부스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기업 홍보장이 된 것 같아 해운대에서는 쓸쓸한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점점 영화제가 관객과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아직까지 입가를 씁쓸하게 적신다. 그럼에도 내년에도 또 가야지 생각하는 걸보면 참 나도 답이 없긴 하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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