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1.01 <쌍화점> 一長의 만족과 一短의 아쉬움 (4)
  2. 2008.07.04 <카운터 페이터> 무엇이 당신 모습인가요?
  3. 2008.06.11 <To each his Cinema> I Love cinema and theater
2009.01.01 21:07

<쌍화점> 一長의 만족과 一短의 아쉬움

<쌍화점> 一長의 만족과 一短의 아쉬움



Korea; 2008; 133min; 35mm; Color
Director: 유하
Cast: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심지호, 임주환


 
2008년의 마지막 영화는 예상했던 것처럼 유하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 <쌍화점>이 됐다. 30일과 31일 어쩌다보니 이틀 동안 두 번을 봤다. 처음에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혼자 극장을 찾았고, 두 번째는 친구들 틈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 <쌍화점>에 대한 이야기와 코멘트들이 끊이질 않았다. 정말이지 2008년 마지막 이틀 동안 사람들에게는 <쌍화점>이 화두인 듯 싶었다. 이렇듯 연말 평단과 관객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이 영화는 최근 볼 게 없다는 극장 분위기에서 진작부터 유일한 화제작으로 떠올랐었다. 동성애, 파격적 베드신 등등 오감을 간질이는 마케팅은 적중했고, 화려한 캐스팅과 독특한 스토리는 관객들의 호기심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뚜껑이 열렸다. 최초 시사에서 지나치게 러닝타임이 길다는 지적에 따라 10분 남짓 줄어든 덕에 지루한 감은 확실히 떨어졌고,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은 베드신은 정말 소문과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고 유하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에 이어 '잘 찍는' 감독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문인 출신이면서도 이렇듯 카메라를 잘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그에게 분명 '영화적 재능'이 충만하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쌍화점>은 장점 만큼이나 단점 역시 적지 않게 노출을 시킨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휘몰아치는 서사에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리기 힘들지만, 잠시 숨을 돌려 생각하면 아쉽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일장일단의 적당한 오락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一長의 만족

<쌍화점>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우선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이야기가 재밌다는 것이다. 애초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 때문에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시간이 줄어든 극장 개봉작에서는 중간에 약간 늘어지는 부분만 제외한다면 그렇게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유하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문인 출신답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그 방법에 있어서는 상당히 지루한 스타일을 가진 측면이 있었다. 같은 이야기가 불필요하게 반복되고, 스토리와 크게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긴장감을 떨어뜨리게 만든 것이다. 가령 140분이 넘었던 전작 <비열한 거리>는 다 들어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였던 이보영의 부분이 너무 길어 보는 내내 몇 번이나 자리를 고쳐 앉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해 <쌍화점>은 사족을 거둬내고 이야기를 왕, 왕비, 그리고 건룡위 총관 홍림 3자의 관계에만 집중하면서 인물들의 갈등을 분산시키지 않고 점층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고 '절절하게' 만드는데 주효한 역할을 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주변의 이야기들, 즉 건룡위(특히 홍림과 승기의 관계)나 대신들의 정치적 암투 등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해서 개연성이 다소 떨어졌다는 지적도 한다. 하지만 세 인물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다뤄야 하는 <쌍화점>의 특성상 다른 부분들의 비중이 많았다면 이야기의 집중도가 떨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노력인 것 같다. 영화의 제작단계부터 촬영이 진행되고 개봉이 되기까지 <쌍화점>은 항상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어느 덧 유하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것 같은 조인성과 그에 못지 않은 빼어난 외모의 주진모가 함께 농도 깊은 애정신을 찍는 다는 사실부터 조인성과 송지효의 과감한 베드신, 화려한 액션신, 32명의 장신 꽃미남들의 총출동 등등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부분 홍보사에서 만들어 낸 소문들에 '낚여서' 영화를 봤다가 씁쓸하게 상영관을 나서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쌍화점>은 그 관심이 분명 '사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스크린의 세 배우는 열과 성을 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충무로에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속하는 배우들의 노력에 관객으로서 정말이지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인성은 그 나이 또래 어느 누구도 못했던 과감한 노출을 시도했다. 수 차례에 걸친 송지효와의 과감한 베드신은 물론이고, 주진모와 지금껏 한국 영화 사상 가장 난이도 높은 동성애 장면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연출한 점, 그리고 복잡한 인물의 캐릭터를 풍부한 표정으로 담아 낸 점은 분명 그를 배우로서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송지효 역시 28살이라는 나이에 여배우로서 하기 힘든 노출을 시도했다. <해피엔드>를 찍었을 당시 전도연이 27살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송지효가 가진 연기에 대한 욕심과 배우로서의 욕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은 참 잘 찍었다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하 감독은 카메라를 참 잘 다루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문인 출신임을 생각한다면 더 신기한 점이다. <쌍화점>역시 <말죽거리 잔혹사>의 옥상 싸움 장면, <비열한 거리>의 굴다리 싸움장면 등등처럼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 숨을 죽이게 만드는 7번 가까운 조인성과 송지효의 베드신이 그렇고, 상당히 조심스러웠을 조인성과 주진모의 베드신이 그렇다. 특히 왕과 홍림의 베드신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연출한 점이 독보인다. (극장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면 어색해서인지 몰라도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기 마련인데 오히려 상당히 진지해서 놀랐다. 보여줄 땐 애매한 것 보다는 확실하게 보여주는게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그리고 홍림과 왕의 마지막 대결장면은 긴호흡을 짧게 나누면서 전작들의 명장면에 비해 손색없는 화면을 선보인다. (조인성과 주진모의 연기 역시 이 장면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一短의 아쉬움

하지만 이런 장점들과 함께 <쌍화점>은 단점 역시 많이 보이는 작품이다. 참 아이러니 하지만 그 단점들은 모두 장점에서 출발한다. 사실 <쌍화점>은 전체적으로 크게 본다면 그다지 큰 문제점을 제기하기 힘들다. 그저 고민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잘빠진 상업영화, 오락영화다. 하지만 유하라는 스타감독과 조인성, 주진모라는 초대박 스타캐스팅, 그 동안 이 영화가 만들어냈던 화제성에 기대한다면 보다 세심한 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부분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세 인물의 관계에 있다. 왕과 홍림, 왕과 왕비, 왕비와 홍림. <쌍화점>을 이루는 세 가지 갈등의 축이다. 세 인물이 이루는 세 가지 관계의 갈등이 이야기를 끌고가고 지탱하는 힘이 된다. 하지만 이 관계의 균형의 축이 심하게 뒤틀려 있다. 사실 세 인물이 갖는 갈등의 출발은 모두 주진모가 연기하는 왕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가 홍림을 옆에 두고 있고, 원나라에서 왕비를 맞았으며, 홍림과 왕비의 만남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이 정점에 있는 왕은 일단 갈등을 시작한 이후 이야기에서 옆으로 비켜나 있다. 영화는 초중반을 넘어가면서 오로지 홍림과 왕비와의 관계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둘의 끈덕진 베드신만이 불필요하게 반복되고 영화의 시작을 열었던 왕과 홍림의 플라토닉적이면서도 에로스적인 관계는 뒤로 밀린다. 개인적으로 홍림과 왕비의 필요 이상의 베드신을 몇 개 드러내더라도 왕과 홍림의 관계를 더 보여줬더라면 갈등의 균형이 맞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왕과 왕비의 갈등은 거의 영화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관계와 갈등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 뒤로 밀리면서 개연성 역시 부족해진다. 오로지 홍림과 왕비의 관계만이 정상적으로 보이고, 홍림에 대한 왕의 태도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상식적, 비이성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일반화가 어려운 동성을 다루는 영화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공감'이라고 할 때 '왕'에 대한 이런 시선은 <쌍화점>이 가진 치명적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배우들의 연기이다. 캐릭터에 대한 배우들의 혼신의 노력이 <쌍화점>의 매력이라고 했는데, 연기를 지적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한다면 <쌍화점>의 배우들은 정말 흠을 잡을 수 없도록 열심히는 하는데 잘 하지는 못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주된 역할을 맡은 홍림과 왕비를 연기하는 조인성과 송지효가 그렇다. 일단 앞에서도 여러번 얘기를 했지만 어린 나이에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와 풍부한 표정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사극'연기에 어울리지 않는 두 배우의 발음은 시종일관 귀에 거슬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주진모의 비중이 다시금 아쉽다. 사실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이는 것은 왕의 역할을 하고 있는 주진모이다. 남자를 사랑하고, 질투하고, 여자와 관계를 할 수 없고, 그러면서 절대권력을 소유한 왕이자, 원나라과 대신들의 끊임없는 견제를 받는 세 인물 중 가장 복잡한 감정의 캐릭터를 주진모는 부족함 없이 연기한다. 하지만 스토리가 지나치게 홍림에게 집중되고, 홍림과 왕비의 러브스토리에 치중하면서 이런 왕의 모습은 빛을 바랜다. (개인적으로 쌍화점을 홍림이 주인공이 아닌 '왕의 시선'으로 다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정말 퀴어영화가 됐으려나...)

또한 멋진 장면들이 있다면 영화에 집중을 방해하는 화면들 또한 있다. 가장이 먼저 생각하는 화면은 32명 건룡위 무사들의 물장구 장면이다. 솔직히 이 장면은 전체를 들어내고 스토리를 전개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다. 단지 홍림이 왕비에게 줄 선물을 사고 어찌할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왜 이 장면에서 호위무사들을 그 정도까지 노출을 시켜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가지 않는다. 관객을 위한 서비스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개연성 없는 너무 심한 노출은 반감만을 살 뿐이다. 그리고 홍림과 왕비의 베드신 역시 필요 이상으로 들어간 측면이 있다. 어느 정도 <색,계>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이었는데, 몇 장면들은 스토리상 전개보다는 '보여주기' 위해 찍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홍림과 왕비의 베드신을 몇 장면 빼고 왕과 홍림의 러브신을 추가하는 것이 스토리 흐름상 적절했을 것 같다. 영화가 훨씬 훨씬 담백하고 간결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유하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난 그의 영화의 여성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제외하고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 그리고 <쌍화점>까지 여성캐릭터의 매력이 무엇이었나 생각하면 주인공 남자가 좋아할만한 단아한 외모를 가진 여성으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유하 감독이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줄곧 '남자이야기'를 해 왔지만 왜 여성캐릭터가 그토록 평면적이고, 관습적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감독이 남성 캐릭터에 공을 들이는 만큼 여성 캐릭터에도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정리하면 <쌍화점>은 잘 빠진 상업영화이긴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허점을 보이고 있는 영화다. 그리고 유하라는 감독이 항상 뭔가 해줄 것 같은 기대를 갖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공허함은 더욱 크다. 차기작에서는 그 공허함까지도 메워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배우들의 아낌없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P.S. 영화를 보다가 왜 갑자기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둘 다 세 남녀의 치명적인 사랑을 다루고 있다. 완전히 다른 영화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사랑은 그들만의 문제이다. 하지만 <쌍화점>은 그렇지 않다. 많은 주변인물들이 연결돼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 때문에 주변인물들은 희생한다. 내 사랑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주변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걸까? <쌍화점>을 보고 나서 쓸데 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나도 행복하고 주변 사람들도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다.



Trackback 0 Comment 4
2008.07.04 16:58

<카운터 페이터> 무엇이 당신 모습인가요?

<카운터 페이터> 무엇이 당신 모습인가요?

<살리 소로비치>, 2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에 살고 있었던 유태인.

등장인물에 대한 한 줄 소개 만으로도 이 영화에 대한 대략의 그림이 그려진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유태인(혹은 가족)->2차 세계 대전의 발발->나치의 광기->홀로코스트->유태인들의 고난로 이어지는 유태인 잔혹사가 어렵지 않게 머릿 속에서 재생된다. 같은 틀 안에서 항상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지만 볼 때마다 쉽게 감정이 이입되는 것은 전체주의의 가장 혹독한 희생양으로 부각되는 상징성과 절대 약자의 입장에서 그 시기를 보내야 했던 역사의 유사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유태인과 전쟁을 다루는 영화들의 반복적인 스토리라인과 구성이 이제는 지겹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중동을 무대로 과거 나치가 했던 것만큼 악날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유태인들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도 무관하지 않다. 노만 핀켈슈타인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이미지와 현실>에서 꼬집었듯이 이스라엘인들이 전방위에서 스스로가 피해자임을 확대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과거를 끊임없이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그들은 어쩌면 피해자의 영역에 있어어서는 신화적 존재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영화적 소재로서 가치가 넘치는 그들의 고단한 역사는 분명 앞으로도 쭉 재생산 될 것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괴물로 변할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지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까지 유태인 이야기를 다뤄온 숱한 영화들이 그랬듯이 <카운터페이터> 역시 소재는 '유태인과 나치'이면서 주제는 '휴머니즘'이다. 비슷한 영화들로 멀리는 <유로파 유로파>,<쉰들러 리스트>가 손에 잡히고, 가까이는 <피아니스트><인생은 아름다워>, <블랙북>이 떠오른다. 아우슈비츠로 환유되는 그들의 고생사가 이번에는 베른하트의 한 수용소로 옮겨졌다. 소재는 사상 최대 위조지폐 작전으로 알려진 <베른하트 작전>. 2차 대전 말기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독일이 전세를 뒤엎기 위해 수감 중인 유태인들 가운데 인쇄전문가, 은행 직원 등 140명을 골라 베른하트 수용소에 위조 화폐 공장을 차리고 영국의 파운드와 미국의 달러, 여권 등를 찍어낸 사건이다. 주인공은 위조의 제왕으로 명성을 떨치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살리(살로몬) 소로비치, 영화는 그의 감정선을 충실히 따라가며 전개된다.

애초에 위조업자로 이름을 날린 범죄자었던 살리는 나치에 잡힌 후에도 갖가지 임기응변으로 목숨을 유지한다. 공산주의자 뿐만 아니라 짐승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내일'이지 자존심이 아니다. 나치의 초상화와 담벽에 선전화를 그리며 목숨을 유지하던 그는 베른하트 작전에 투입되면서 '편한' 수용소 생활을 시작한다. 생존을 위해 나치와 타협한 그이기에 그와 갈등하는 인물은 독일의 나치보다 신념을 중시는 동료 인쇄공 브루거다. 전쟁 전부터 아내와 반나치 활동을 해온 브루거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서 나치가 이기도록 도울 수 없다는 신념을 고집한다.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살리와 브루거의 갈등 속에서 가장 확연히 드러난다.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지만 위조 지폐를 만들어 당장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챙겨야 했던 살리. 하지만 그도 동료 브루거를 배신할 수 없는 이중고에 빠져있다. 반면 자신 때문에 동료들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신념을 선택한 브루거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당장의 담배 한 가치와 탁구 한 게임이 필요한 살리와 브루거를 둘러싼 다른 동료들의 입장이 겹치면서 갈등은 증폭된다. 생존과 죽음이 한 순간에 갈리는 수용소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그들의 고민은 어느 쪽이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평행선을 달린다. 오스트리아 출신 슈테판 루조비츠키 감독은 전쟁이라는 극한 순간에서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 욕구와 이성적 판단 간의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상황에서는 누구의 선택에 대해 평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살리 소로비츠의 회상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구조는 수용소 경험을 통한 살리의 변화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에서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등장하는 살리는 마지막에는 극도의 혼란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팔뚝에 포로라는 주홍글씨를 새긴 그는 더이 상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수용소를 벗어난 이후 그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왜? 수용소 안에서 자신과 동료들의 생명을 위해 나치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더 크게 유태인이라는 더 큰 집단을 배신한 것이었다. 목숨을 위해 건물 밖에서 들리는 처참한 소리들을 애써 외면해야 했고, 나치들의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견뎌야 했다. 또 나치가 패전한 후 그들을 고깝게 보면 유태인들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해야 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동료의 자살도 목도해야 했다. 동료들에게도 전쟁이 끝나면서 영웅은 더 이상 살리가 아닌 브루거가 된다. 전쟁 후에도 안전하게 내일을 살기 위해 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결국 모두가 피해자라는 답을 갖게 된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개인은 나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 역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메시지를 역사적 상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식민지 시대, 핍박받았던 절대 다수의 민중과 생존을 위해 '친일'을 선택한 사람들을 모두 '피해자'라고만 단정지을 수 있을까? 어쩐지 영화 속 유태인의 이야기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우리의 현실에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양쪽 다 피해자라고만 단정짓기에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과 역사(구조) 간의 관계는 결론이 나지 않는 항상 갈등의 진행형이다.

기존 영화들이 그랬듯이 모두가 <피해자>임을 반복한 평이한 메시지가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카운터페이트>는 짧은 시간 동안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중간중간 탱고 음악이 꽉 조였던 긴장을 풀어주고 <타인의 삶>의 제작진의 영상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무엇보다 지금 어수선한 시국에서 '개인'의 의미와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 나인지......"
Trackback 0 Comment 0
2008.06.11 12:16

<To each his Cinema> I Love cinema and theater

<To each his Cinema> I Love cinema and theater

"그럼 그렇지..."
"이건 ooo 감독 같은데... 아니네..."

친구와 내기에서 이겼다. 8대 7의 아슬한 스코어 차이로^^
누가 보면 영화 보면서 내기할 게 뭐가 있겠나 하겠지만 요사이 씨네큐브에서 볼 수 있는 <To each his cinema, 그들 각자의 영화관>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35명의 감독이 만든 33편의 3분 남짓한 짧은 단편을 묶어놓은 옴니버스 영화다. 비슷한 기획을 가진 영화가 가까이 <사랑해, 파리>가 있었고, 앞으로 <사랑해, 뉴욕>, <사랑해, 도쿄> 등이 제작된다고 한다. 하지만 왠지 이들 영화는 시청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홍보성으로 만들어졌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파리, 뉴욕, 도쿄를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That's me!!!) <그각영> 역시 깐느 영화제 60주년 기념작으로 만들어졌기는 하지만 깐느와는 큰 연결고리가 없다. 영화를 보는 공간 뿐만 아니라 극장 자체가 가진 의미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랑해> 시리즈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극장이 없었다면 영화가 이렇게까지 매력적인 매체가 될 수 없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친구와 내기를 걸었다. 내기 종목은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가 20자평에서 팁을 준 <영화랑 감독 짝짓기!!!>. 감독들도 소품처럼 가볍게 만든 영화인 만큼 관객도 가볍고 즐겁게 즐겨주는 센스!!!
이름만 대면 어떤 영화들을 만들었는지 머릿 속에 필모그래피가 펼쳐질 정도로 한 가닥 하는 감독들인 만큼 분명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상영 전에 참여한 감독들의 이름을 자세히 살피고, 영화가 끝날 때마다 이름들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기타노 다케시와 라스 폰 트리에가 등장할 때는 실소를 떠뜨렸고, 총 가지고 관객을 괴롭힐 때는 "저런 짓은 크로넨버그 밖에 안해"하며 정답을 확신했다. 원색의 블루톤 화면은 틀림 없이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였고, 쿠바를 다시 등장시킨 영화는 월터 살레스였다. 구스 반 산트, 허우샤오시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는 "3분인데도 어찌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는지" 영화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완전 사랑하는 켄 로치와 왕가위를 몰라본 것이 어찌나 미안한지 머리를 쥐어밖았다. 난 8개를, 친구는 7개를 옳게 짝졌다. 친구가 다음 영화를 보여주는 걸로 마무리 짓고, 근처 카페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리의 영화관'에 대한 각설들을 풀어봤다.

<내기 때문이었는지, 영화가 좋아서 그랬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단편이었든, 아니었든 단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진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씨네21의 박평식 평론가의 "울고 웃고 졸던 검은 도서관"이라는 표현처럼 극장은 내게도 그런 공간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아빠의 손을 잡고 삼형제가 처음으로 영화라는 것을 보러 간 청주 중앙극장. 아빠의 말로는 그 때 벤허를 봤다고 하는데 10분만에 우리 삼형제가 모두 잠들어 그냥 나왔다고 한다.

* 중학생.. 엄마손 잡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이 어린짓이라며 친구들과 처음으로 "우리 영화보러 가자." 고 나선 청주 도도극장.

* 타이타닉이 개봉할 때는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전타임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상영관에 들어가 결말을 보지 말아야 한다며 친구와 눈과 귀를 막고 오직 정신을 흩트리기에 정신이 없었고

* 여고괴담을 볼 때는 타이밍의 실패로 자리를 못잡아 구석진 자리 보조석을 놓고 고개를 이리저리 빼가며 스크린에 눈을 고정시킨 기억도 있다.

* 영화 시간이 늦어 허겁지겁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지방도시의 극장들은 약간의 시간만 허락한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같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무지정 좌석제였기 때문이다. 중앙극장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는 혼자 2번 보고 3번 보다 졸려서 나왔던 기억...

*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보기 위해 이리저리 눈치보며 들어가 성공의 쾌재를 부르던 순간도 있었고, 다툰 친구와 화해하기 위해, 서먹한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찾은 곳도 그 곳이었다.

* 지역 영화동호회가 보기 힘든 영화를 틀어주면 이런저런 핑계대고 야자 다 빼먹고 찾아가 비록 시민회관과 같은 불편한 자리였지만 그 공간이 너무 행복했다.

* 군대 첫 휴가를 나와 무슨 영화가 하는 줄도 모르고 심야 상영 티켓을 끊어, 극장의 불이 꺼지는 순간 가슴 뭉클했던 기억은 아직도 짜릿하다.

그런 행복들은 점점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일상이 되어버려서 고마움을 모르게 된 걸까? 이제는 모두 없어지고 멀티플렉스로 채워졌지만 과거 단관 극장들과 함께 하면서 느꼈던 잊어서는 안될 감정들을 <그각영> 영화 한 편으로 다시금 기억하게 됐다.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I LOVE THEATER and CINEMA!!!

P.S. 마이클 치미노와 코엔 형제의 영화가 빠졌다고 한다. 상업적 이용을 거부했단다. DVD에는 들어있단는데... 하나 구입해도 후회하지 않을 듯...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