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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7 <한 여름 밤의 꿈> 장맛비에 낚이다.
  2. 2009.03.13 <39계단> 원작에 미안하지 않은 장르의 전복 (2)
2009.07.17 16:16

<한 여름 밤의 꿈> 장맛비에 낚이다.

<한 여름 밤의 꿈> 장맛비에 낚이다.


원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번역, 연출 : 최형인
출연 : 김효진, 최진영, 안내상, 최용민, 김보영 외

 
확실히 비는 사람을 묘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뭔가 굉장히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전주곡... 그게 무엇일까 두려워 자꾸 안으로만 파고 들게 만드는, 숨을 죽이고 내리는 빗줄기와 빗소리를 그저 바라보고 들을 수밖에 없이 만드는 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눈'과는 분명 다른 어떤 것이다. 눈은 소리가 없고, 촉각이 없다.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시각 뿐이다. 하지만 비는 오감 전체를 자극한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몸에 닿음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거칠고 강한 비일수록 오감은 크게 동요하고, 감정은 제멋대로 휘둘린다. 구멍난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장마... 장마가 되면 사람들은 그래서 가끔 이성이 아닌 철저하게 감정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된다.




14일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잦아들때쯤 다시 퍼부었고, 이제 그쳤겠거니 하는 생각에 뒤통수 맏기가 일쑤였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세상 소음 다 잡아먹는 빗소리만 듣고 있었더니 오감이 다 지친듯했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와의 약속도 빗줄기에 깨져버렸고, 그냥 집에 가면 한없이 까라질 것 같아 버스에서 내려 무작정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전시가 됐든, 공연이 됐든 아무거나 보자." 라는 생각으로...  우산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고, 홀딱 젖은 걸음을 공연장에 들여놓자 <한 여름 밤의 꿈> 공연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8시 공연 시작.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남았다. 근데 매진이란다. 이 비를 뚫고 여기까지 이거 보려고 오는 사람이 이리도 많다니... 혹시 취소표가 나올 수 있다는 티켓박스 직원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 공연 시작 5분을 남기고 티켓 한 장을 손에 쥐었다. 세상에!!! 아무리 소극장이지만 사람들로 꽉차 있는 공연장을 보니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나처럼 그냥 집에 가기 싫어 한 평도 안 되는 우산에 몸을 맡기고 온 것 같았다. Great Korean!!!

어쨌든 장맛비에 낚여 계획에 없이 공연장을 찾았지만 마음은 좋았다. 소극장 공연이 오랜만이어서 반가웠고,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세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이라서 더 그랬다. 편견이겠지만, 난 왠지 "오~~~" 로 시작해 뜻 모를 말만 마구 쏟아내는 클래식한 고전연극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날씨 탓이었는지, 기분 탓이었는지 (무대에서 처음 보는 작품이라서 예전 공연, 누구의 공연과 비교해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할 수는 없지만) 공연은 충분히 즐길만 했다. TV에서 낯익은 배우들의 연기가 무대에서 다소 이물감을 들게했음에도 여러 인물들이 많들어 내는 촌극에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세익스피어의 4대 희극이라고는 하지만 뭐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두고 공연을 본 건 아니었기에 부담감도 제로였다. Just Enjoy!!!

방향 감각을 잃은 연인들의 갈지자의 사랑. 오늘을 죽고 못사는 열정이 내일의 지긋지긋한 이별만 못한 것이 사랑이란 것이다. 그 변화무쌍함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세익스피어는 인간이 아닌 요정의 장난질 정도로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다. 요정의 장난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제자리를 찾은 그들의 사랑도, 운명을 읊조리는 달콤한 말과 오감을 저리게 만드는 손짓들도 어쩌면 제목처럼 모두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것일 수 있겠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2시간 전까지만해도 땅을 파고 들어갈듯한 기세였던 빗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것 역시도 요정들의 장난질이었을까 아니면 한 여름밤의 꿈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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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3 10:25

<39계단> 원작에 미안하지 않은 장르의 전복


<39계단> 원작에 미안하지 않은 장르의 전복


Korea; 120min; Comedy & Mystery
Cast: 이석준, 정수영, 임철수, 홍태선
2009. 2. 21~3.29;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이런 전복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많은 영화가 연극으로 만들어지고, 반대로 많은 연극이 영화로 만들어진다. 영화와 연극 뿐만 아니다. 문학, 뮤지컬, 심지어 게임까지 이제 대중 예술계에서 텍스트의 호환은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줄일 수 있고, 검증된 텍스트를 통해서 웬만큼의 관심도 이끌어 낼 수 있다. 물론, 흥행도 기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위험부담은 늘 존재한다. 원작을 뛰어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일은 정교빈이 애처가가 되는 만큼 어렵다. 항상 원작의 인기에 기댄 아류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살인의 추억>처럼 원작을 창조적으로 재탄생시킨 작품도 있긴 하지만...

무대를 옮기더라도 텍스트는 통상 같은 장르의 범주 속에서 호환되는게 법칙처럼 굳어졌다. 형태가 달라져도 장르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위험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전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감히 누가 <추격자>를 멜로드라마로 바꿔서 연극 무대에 올릴 생각을 하겠는가... 근데 이런 리스크들을 감수하고 꽤 성공적인 장르의 전환에 성공한 작품이 있다. 동숭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연극 <39계단>이 그 주인공이다. 작년 8월 초연에 이어 두 번째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알프레드 히치콕의 1935년도 작품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히치콕의 영국 활동 시기 특징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히치콕은 말이 필요 없는 미스터리의 원형이다. 누벨바그 혁명가들이 발견한 이 B급 감독은 지금까지도 한 영화적 장르의 전설이자 신화처럼 군림해오고 있다. 그 정도로 알프레드 히치콕과 미스터리 장르는 서로를 설명해주는 절대 명제처럼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연극 무대에서 공연 중인 <39계단>은 놀랍게도 미스터리가 아니다. 물론,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연극의 장르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코미디'이다. 코미디로 옷을 갈아입은 히치콕의 고전!!! 대체 어떤 맛과 어떤 향기를 가진 작품일까?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토요일 영화보기로 약속하고 만난 친구와 대학로를 거닐다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정확히 말하면 <39계단>은 히치콕이 처음 만든 창작물은 아니다. 1915년 발표된 존 버칸(John Buchan)의 소설을 토대로 히치콕이 1935년 영화로 만들었고, 이것이 지금까지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 1959, 1979년 각기 다른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2008년에는 영국 BBC에서 TV 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소설과 몇 번의 영화화를 거쳐 <39계단>이 연극 무대에 오른 것은 2006년 영국 웨스트엔드부터였다.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브로드웨이를 거쳐 작년 한국에서도 초연을 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연극 <39계단>은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토니상 수상작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원작에 미안하지 않은 장르의 전복에 성공한 작품이었다.

솔직히 히치콕의 원작을 봤다면 이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린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과 가능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우선, 의구심은 공간과 인물 때문이다. 주인공 리차드 해니의 도주극인 영화 <39계단>은 처음과 끝의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같은 공간이 절대 반복되지 않는다. 극장, 해니의 집, 기차 안, 시골집, 대저택, 경찰서, 연설회장, 여관 등 기억나는 몇 개만 꼽아도 과연 이 많은 공간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연출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실내 공간 뿐만 아니다. 해니가 산 넘고 강 건너 경찰과 범죄자들에게 동시에 추격을 당하는 실외 장면들은 더욱 난감하기만 하다. 공간이 많은 만큼 인물 역시 엄청나다. 영화 속에서 공식적으로 15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주요 배역만 따져봐도 대규모 공연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연극 브로셔에 나온 배우는 달랑 4명 뿐이다. Is it possible? 그럼에도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영화 <39계단>이 상당히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원작을 보지 못해 느낌을 알 수 없지만 히치콕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기 만들었던 작품들과 달리 <39계단>은 상당히 코믹한 요소들이 잘 배어 있다. 


결과적으로 연극 <39계단>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코믹적 요소들을 극대화하면서, 무대화 시키기 어려운 점들을 기발할 정도로 코미디 장르 안으로 흡수하고 있다. 솔직히 <라이방>, <라이어>, <늘근도둑 이야기>처럼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코미디를 기대한 관객이었다면, <39계단>은 다소 심심하게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적 장치들이 연극적 양식으로, 미스터리 장르의 화면구성이 코미디의 표현 방법으로 변하는 '아기자기한 전복'을 발견한다면 충분히 흥미롭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공간의 재구성이 가장 흥미롭다. 단 몇 개의 소품과 장치들을 활용해서 영화 속의 모든 공간들을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의 전환은 극 중에서 가장 중요한 웃음의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문 하나로 대저택의 규모를 설명하는 장면, 창문 하나로 집의 구조를 보여주는 장면 등에서 보여지는 재치는 소소한 웃음거리를 던져준다. 또한 브로셔의 홍보 문구대로 집안의 가구가 기차로 바뀌고, 의자가 자동차로 바뀌는 등의 소품들을 활용한 공간의 전환은 기발하다 못해 영악하기까지 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해니가 산과 강, 숲에서 벌이는 추격신... 가장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과 달리 무대에서는 너무도 쉽게, 하지만 코믹하게 풀어냈다.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윤지후처럼 <39계단>도 '흰 천과 그림자' 만으로 해니가 협곡을 건너고, 비행기가 날라다니는 장면 등을 효과적으로 연출한다. 

인물 역시 공간 만큼이나 '경제적'으로 활용한다. 무대 위의 배우는 모두 4명... 남자 한 명이 주인공 리차드 해니를, 여자 한 명이 애너벨라, 파멜라, 마가렛을 연기하고 나머지 2명이 멀티맨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 멀티맨들의 인물 변환이 <39계단>의 또 다른 웃음 포인트가 된다. 특히, 기차 안, 여관장면, 연설회장, 경찰서 등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절묘한 호흡은 그냥 스쳐보내기 아까울 정도이다. 해니 역에 더블 캐스팅 된 이석준 역시 뮤지컬에 갈고 닦은 풍부한 성량 덕분인지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객석을 꽉 채운다. 리차드 해니의 장난스러우면서도 대담한 캐릭터 역시 그의 풍부한 표정에서 잘 살아난다. (공연 후 관람객에게 사인을 해줄 때 장난스러운 행동들이 진짜 리차드 해니 같았다.)

공간과 인물의 변환 뿐만 아니라 원래 영화가 가지고 있던 코믹한 요소들을 잘 살려낸 장면들을 확인하는 것도 큰 재미이다. 개인적으로 히치콕의 원작을 보고 간다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르고 가도 괜찮겠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런 전복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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