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17 16:16

<한 여름 밤의 꿈> 장맛비에 낚이다.

<한 여름 밤의 꿈> 장맛비에 낚이다.


원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번역, 연출 : 최형인
출연 : 김효진, 최진영, 안내상, 최용민, 김보영 외

 
확실히 비는 사람을 묘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뭔가 굉장히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전주곡... 그게 무엇일까 두려워 자꾸 안으로만 파고 들게 만드는, 숨을 죽이고 내리는 빗줄기와 빗소리를 그저 바라보고 들을 수밖에 없이 만드는 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눈'과는 분명 다른 어떤 것이다. 눈은 소리가 없고, 촉각이 없다.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시각 뿐이다. 하지만 비는 오감 전체를 자극한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몸에 닿음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거칠고 강한 비일수록 오감은 크게 동요하고, 감정은 제멋대로 휘둘린다. 구멍난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장마... 장마가 되면 사람들은 그래서 가끔 이성이 아닌 철저하게 감정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된다.




14일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잦아들때쯤 다시 퍼부었고, 이제 그쳤겠거니 하는 생각에 뒤통수 맏기가 일쑤였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세상 소음 다 잡아먹는 빗소리만 듣고 있었더니 오감이 다 지친듯했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와의 약속도 빗줄기에 깨져버렸고, 그냥 집에 가면 한없이 까라질 것 같아 버스에서 내려 무작정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전시가 됐든, 공연이 됐든 아무거나 보자." 라는 생각으로...  우산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고, 홀딱 젖은 걸음을 공연장에 들여놓자 <한 여름 밤의 꿈> 공연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8시 공연 시작.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남았다. 근데 매진이란다. 이 비를 뚫고 여기까지 이거 보려고 오는 사람이 이리도 많다니... 혹시 취소표가 나올 수 있다는 티켓박스 직원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 공연 시작 5분을 남기고 티켓 한 장을 손에 쥐었다. 세상에!!! 아무리 소극장이지만 사람들로 꽉차 있는 공연장을 보니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나처럼 그냥 집에 가기 싫어 한 평도 안 되는 우산에 몸을 맡기고 온 것 같았다. Great Korean!!!

어쨌든 장맛비에 낚여 계획에 없이 공연장을 찾았지만 마음은 좋았다. 소극장 공연이 오랜만이어서 반가웠고,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세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이라서 더 그랬다. 편견이겠지만, 난 왠지 "오~~~" 로 시작해 뜻 모를 말만 마구 쏟아내는 클래식한 고전연극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날씨 탓이었는지, 기분 탓이었는지 (무대에서 처음 보는 작품이라서 예전 공연, 누구의 공연과 비교해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할 수는 없지만) 공연은 충분히 즐길만 했다. TV에서 낯익은 배우들의 연기가 무대에서 다소 이물감을 들게했음에도 여러 인물들이 많들어 내는 촌극에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세익스피어의 4대 희극이라고는 하지만 뭐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두고 공연을 본 건 아니었기에 부담감도 제로였다. Just Enjoy!!!

방향 감각을 잃은 연인들의 갈지자의 사랑. 오늘을 죽고 못사는 열정이 내일의 지긋지긋한 이별만 못한 것이 사랑이란 것이다. 그 변화무쌍함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세익스피어는 인간이 아닌 요정의 장난질 정도로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다. 요정의 장난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제자리를 찾은 그들의 사랑도, 운명을 읊조리는 달콤한 말과 오감을 저리게 만드는 손짓들도 어쩌면 제목처럼 모두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것일 수 있겠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2시간 전까지만해도 땅을 파고 들어갈듯한 기세였던 빗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것 역시도 요정들의 장난질이었을까 아니면 한 여름밤의 꿈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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