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3 03:13

'어른'을 보내며


'어른'을 보내며

2009. 8. 28 (금) 서울광장에서



2003년 제대 후 학교로 돌아와 북한과 통일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난 신문방송을 전공하면서 왜 연결고리가 빈약한 북한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단 한 번도 그럴듯한 답을 한 적이 없다. 몇 번 멋있는 답을 찾아보고자 머리를 굴려봤지만 그 때마다 떠오르는 유치한 생각들을 누가 알까 두려워 접어두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답을 찾기 힘들 것 같다. 이제 아예 후자쪽으로 전공을 돌렸으니 어려운 고민 하나는 줄어든 셈이다. 순전히 다른 차원의 호기심이라고만 해둬야 할 듯하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공부에 재미가 붙었던 건 당시 분위기가 분명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관계는 분단 이후 가장 역동적이었다.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변화들이 이곳저곳에서 터져나왔다. 가장 중요한 역사의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벅찼고, 그 순간을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판단할 수 있음이 뿌듯했다. 전공을 바꿔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그 상황에서 더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공부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누가 원인을 제공했든 똑같이 반복되는 상황들에 지쳤고, 정권에 따라 지역에서 우리의 공간이 줄어드는 현실에 실망했다. 이 학문 분야의 특성상 순수 사회과학에서 추구하는 이론적 함의 보다는 정책적 함의를 더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여기서 어떤 정책적 함의를 찾을 수 있을까?, 정책이 있더라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는가?, 과연 뭔가 해보고자하는 의지는 가지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이런 희망 잃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괴롭히고 있다. 특히나 요즘은 더더욱...

그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그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암울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누구도 갖지 못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남북관계이든, 민주주의이든 한 번의 꺾임도 없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걸로 말이다. 그가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때문이 아니라 분명 누구도 쉽게 꿈꾸지 못했던 희망이 이 땅에서 가능하다는 믿음을 쉼없이 주었기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의 죽음에 현실이 지지부진하다는 핑계로 책 열기를 게을리하는 내가 부끄럽다. 나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준 그가 다시 한 번 길을 보여준다.


 

금요일 서울광장에 다녀왔다. '국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서일까? 석달 전과는 많이 달랐다. 광장을 둘러싼 경찰차도 없었고, 덕수궁 담장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도 없었다. 모두들 그의 죽음을 준비한 듯 차분한 추모 분위기였다. 집에 돌아와보니 100일 가까이 어쩌지 못하고 책상 위를 지키고 있는 근조리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오늘 가져온 리본을 뉘였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말이 쏟아질 것 같아 노트북을 열었는데 목에서 막히고 손끝에서 굳어버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 기간 동안 유시민 전 장관은 한 영화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뜨거운 추모 열기를 보는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짧게 답을 했다. "우리가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한거죠..." 짧은 말이지만 갑작스런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한 분의 어른을 보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존경할만한 어른을 존경한거겠죠."


P.S. 어느 누구의 것보다도 그의 자서전이 기다려진다. 원고지 5,000매 분량이 지금 마무리 작업 중에 있고, 곧 출간 예정이라는 보도를 봤다. 그의 인생이 곧 한국의 현대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현대사가 굴곡졌듯 그의 발걸음에도 공과 과가 존재한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그의 기억과 기록을 통해 확인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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