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08 17:08

어데로 가야할꼬...


어데로 가야할꼬...


가끔 "담임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살면서 결정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놓일 때 특히 그렇다. 더구나 나이에 비례해 선택의 순간들은 점점 많아지고, 무게감 역시 육중해진다. 초, 중, 고 늘 옆에 있을 때는 그렇게 귀찮고 성가시기 그지없던 존재가 이제는 아쉽기만 하다. 12년 공교육이 이리도 사람을 타성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거 해!!!" 라고 썩소를 날려줄 누군가가 필요한 건 어쩔 수 없다. 그토록 내 인생은 나 혼자 결정하고 이끌어갈 수 있다고 자부했건만 그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저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혹시 다른 변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가만히 그냥 있는 게 좋을까..." 나이는 생각의 곁가지들만 무성하게 키웠을 뿐 결단력에는 물과 거름을 야박하게 준 것 같다.

궁시렁 대면서도 누군가의 말에 의지해 방향을 잡고 한 발 내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제와 담임 선생님을 찾는 건 그 만큼 나이가 더할 수록 인생의 멘토를 찾기 어렵다는 것과 같은 말일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순간부터 인생의 멘토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주위의 누군가가 됐든, 역사 속의 인물이 됐든, 아니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성공시대나 무릎팍 도사에 나올 누군가가 됐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내 그릇에 어울리는, 그래서 내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오늘부터 저 사람을 내 삶의 멘토로 삼겠어!" 떵떵거리고 선언하는 건 아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의식하게 될 때 그 누군가는 멘토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 그런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니 누구일까?

부모님이라는 행사용 멘트는 차치하고 내가 지금까지 좇아왔던 멘토들은 책과 영화를 통해 만나왔던 것 같다. 박경리와 황석영... 그들이 살아온 삶과 상관없이 문장을 통해 그들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문장을 통해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고, 그 궤적을 훑어가는 과정에서 둘은 내 삶의 방향타로 자리를 잡았다. 조변석개하는 역사적 순간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 문장을 일치시키고자 애쓴 흔적들이 마냥 멋있게 보였던 것 같다. 박경리가 지난 해 그토록 경외하던 '땅'의 부분이 되었고, 남은 건 황석영이었다. [오래된 정원]을 읽으며 뒤늦게 황석영의 작품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초기작까지 뒤져가며 거의 모든 작품들을 손에 잡았다. 네이버에 청년을 위한 소설 연재를 시작할 때도, 무릎팍 도사에서 예능에 어울릴 법한 과장된 몸동작을 보여줄 때도 여느 무게 잡는 작가들과 다른 그의 행적들을 응원했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 전 '그 분'과 함께 중앙아시아 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모습은 내게 숱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표 만을 남겼다.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는 믿을 수 없은 말들, 그리고 그에 대한 황석영 자신의 길고 긴 해명과 같은 글... 무엇이 진실이든 한쪽에서는 '변절자'로, 다른 한 쪽에서는 '첩자'로 전락한 그의 모습 자체가 내게는 상처였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의 글을 읽겠지만, 풀리지 않을 물음표들은 그를 예전처럼 대할 수 없게 만들 것 같다.

그리고 최근 신문기사에서 또 하나의 이름을 발견했다. 영화면이 아닌 국제면에 그의 이름이 새겨진 문장을 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분명 문화부 기자였다면 그의 이름은 자장커가 아닌 지아장커라고 적었을 것이다. 페이지를 잘못 잡아 이름조차 낯선 그 이름이 그가 아니기를 바랐지만 우려는 현실이었다. 호주에서 열리는 멜버른 영화제에 중국 영화 감독들이 보이콧을 선언했고 그 가운데 지아장커가 있었다. 위구르 자치구 소요 사태의 배후로 지목 받은 레비야 카디르의 다큐멘터리(제프 다니엘스 감독)가 상영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중국의 해커들은 영화제 홈페이지를 급습했고, 지아장커 역시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물론 멜버른 영화제가 충분히 정치적인 의도에서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정치적인 쇼라면 꼭 정치적인 쇼로 답을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어느 쪽의 편을 들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지아장커라는 사람으로부터 나온 대응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데뷔작 <소무>부터 시작해 최근작 <24시티>까지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영화를 난 좋아했다. 그리고 그 온기는 모두를 향해 있음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의 이름 앞에 하나를 추가시켰다. 그는 '중국인' 영화감독이었다. 이제 그가 어떤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도 모두를 향한 '보편적 메시지'는 찾기 힘들 것 같다.

어찌 멘토가 사람만이 될 수 있을까. 물건이든 공간이든 마음을 붙일 수 있다면 충분한 자격 요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요사이 멘토와도 같았던 공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화문 아트플러스 극장의 터줏대감 씨네큐브가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는 소식... 백두대간이 10년 가까이 운영해 오던 씨네큐브에서 방을 뺀다고 한다. 흥국생명에서 단독으로 운영을 한다고 하니 정확히 말하면 당분간 씨네큐브가 문을 닫는 것은 아닌 듯하다. (물론 내년 3월 이후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음식맛이 좋았던 단골집도 주인이 바뀌면 이전만 못한 법이다. 20살 상경해서 지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숱한 기억과 추억이 그 곳에 있다. 해머링맨도, 씨네큐브도 그대로 있겠지만 이 친구들을 바라보는 나는 전과 같지 않을 것 같다. 술에 취한 주인을 실고 천관녀를 찾은 김유신의 말처럼 나 역시 광화문 사거리에서 무의식적으로 씨네큐브로 향할지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이젠 여기가 아니야..." 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백두대간은 이대의 아트하우스 모모로 자리를 옮긴다고 한다. 부디 그곳을 통해서라도 오래된 친구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가지 확인되지 않은 "썰"들이 난무하지만 무엇이 진실이든 인사는 해야할 것 같다. "그 동안 덕분에 즐거웠어요. 고마워요. 씨네큐브!!!" 

여하튼 하 수상한 시절... 여러가지 방향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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