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에 해당되는 글 3건
- 2008/05/26 '도시'와 '왕자님' <나는 인어공주>
- 2008/05/14 5대의 회초리
- 2008/05/07 당신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 캔을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냥 들어온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이제 여름인 듯 싶다.
약간은 미지근한 물에 샤워를 마치고 자연스레 캔맥주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올해 처음으로 반팔을 꺼내 입었다.
아침 뉴스를 보고 덥겠다 생각은 했지만 내내 등이 젖어 있을 만큼 더운 날씨였다.
더웠던 만큼 정신 없는 하루를 보냈다.
개인적을 이유로 선생님과의 약속을 하루 미뤘는데 친구들이 제대로 미쳤단다. ㅋㅋ
데드라인을 연기하고도 간신히 시간을 맞췄다.
교수실을 나오는데 왠지 할 일이 끝났다는 후련함보다는 뭔가 허전하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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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작정 들어간 대학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1년 만에 다시 기자가 되보겠다고
6개월 저널리즘 스쿨 과정에 등록했다.
그리고 한 신문사에서 6개월 과정 인턴도 시작했다.
학교 RA를 병행하면서 말이다.
뭔가 하는 일은 많고 바쁜 거 같은데
손에 잡히질 않는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이 않는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살고 싶은 삶을 얻기 위해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물음표다.
매일매일 나 하나 돌보기 힘든 하루들이다.
내 인생의 주체도 나고, 객체도 나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개체화 된 주체다.
이미 하루하루는 시스템 속에서 내가 스스로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누구도 개입할 여지가 없이 촘촘하지만 결국 나 자신의 것도 아니다.
근데 속고 있다. 난 내 삶을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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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에서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러시아 영화 <나는 인어공주>를 봤다.
영화가 끝나고 '타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
그럴듯한 거짓말에 속고 살기 때문에 더욱 타자는 개입할 공간이 없다. 감히 어딜...
주인공 알리사는?
현대판 인어공주 알리사는 괴팍하다.
외모도, 행동도, 말투도, 생각도 동화 속 인어공주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바닷가 마을에서 고만고만한 요술을 쓰며 살던 그녀가 가족과 함께 도시로 나온다.
물 위에 나온 인어공주는 왕자님을 만난다.
알리사도 왕자님을 만난다.
'도시'와 '왕자님'
알리사에게 새롭게 다가온 타자들이다.
'도시'
모스크바는 대도시다. 사람들에게 국가를 위해 헌신할 것을 종용하던 갖가지 혁명 문구들이 있던 자리를 이제는 소비에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화려한 광고들이 차지하고 있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서 더 많이 경쟁한다. 알리사가 결국 누군가를 죽인 것처럼...
생산, 분배 위주의 시스템에서 소비, 경쟁 위주의 시스템으로 바뀐 도시.
그 속에서 알리사 역시 소비 된다. 휴대폰으로 맥주잔으로, 우주의 땅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미지의 소녀로...
어느 사회가 우월하다는 호불호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어디가 됐든 개인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둘다 경계가 모호하다. 도시가 주체인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주체인지...
어디든 개인은 객체다. 스스로의 삶을 통제, 제어할 수 없는
'왕자님'
왕자님은 이상향이다.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자극이다.
왕자님에게 있어 알리사 역시 새로운 공간이자 자극이다.
소통이 가능한 타자.
도시를 매개로 만난 왕자님은 타인과 관계맺음에 서투르다.
돈, 명예, 외모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기에 부족한 것이 없지만 뭔가 결핍이 느껴진다.
그 공간을 알리사가 파고 들었다.
둘의 온전한 소통,
감독의 영화가 희망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모두가 개체화 된 주체로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소통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이는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때문에 사람들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는 것이 아닐까?
사랑, 우정 등의 이름을 붙여서... 나 역시도 다르지 않다.
근데 불만이다.
감독은 왜 알리사를 죽여야 했을까?
그렇지 않으면 영화가 '인어공주'인 줄 모를 것 같아서 그랬을까?
유쾌한 영화지만 마지막의 '희생'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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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소통의 관점에서 영화를 풀었지만 영화는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알리사의 성장 영화면서
할머니, 어머니, 알리사로 이어지는 여성영화이기도 하다.
굉장히 정치적인 환타지면서, 의외로 동화적 멜로 요소도 있다.
다른 이들은 어떤 관점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될지 궁금하다.
"13번, 김응서"
"객관식 75점, 주관식 20점. 합 95점입니다."
"탁!탁!탁!탁!탁!"
중간고사가 끝난 교실. 회초리가 손바닥을 다섯 번 울렸다. 난 5점을 '틀린 벌'로 5대를 맞았다. 어느 학교 교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그 날의 회초리는 뭔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OMR 답안지에는 객관식 75, 주관식 25, 합 100점이라고 적혀있었다. 틀린 줄 알았던 주관식 한 문제의 답을 옳게 적어낸 것이다. 5대의 회초리는 틀린 점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점수 때문이었다.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50점을 맞더라도 어떤 문제를 맞았고, 어떤 문제를 틀렸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에는 요행으로 맞춘 문제와 틀린 문제도 정답을 적을 수 있습니다. 전 여러분이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수학에서 100점을 맞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산수 젬병이었던 나는 나머지 공부를 도맡아 했고, 중학교에 올라와서까지 수학시간만 되면 식은땀을 주체하지 못하는 공포증에 시달렸다. 문제를 잘 푸는 친구들은 항상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성적표에 '수학 100점'이라고 적힌 친구들은 위인과도 같았다.
수학과는 인연이 없다는 생각으로 포기해 버릴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피하기만 하는 모습이 싫어 처음으로 수학책을 손에 쥐고 한 번 싸워보자 마음을 먹은 것이 중학교 2학년을 시작할 때였다. 무모하고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꿈이 선생님과 수업을 함께 하며 천천히 현실로 다가왔다. 머릿속에 꼬였던 매듭이 풀리며 난공불략과도 같았던 수학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16살에 '극복'이 무엇인지 몸으로 느꼈고, '성취'의 단맛이 어떤 것인지도 알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받아본 수학 100점에 대한 선물은 칭찬이 아닌 다섯 대의 쓰라린 매였다.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줄 알았던 그 결과에 선생님은 회초리를 드셨다. 하지만 그 때의 회초리는 달콤한 칭찬보다 값진 가르침을 남겼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렸지만 이후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목적은 단지 수학에 허덕이는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소중히 해야 할 것은 100점이라는 결과보다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이었던 것이다.
한 달 전 쯤 신문을 통해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았다. 8년 동안 고등학교 3학년 맡았던 선생님은 그 날도 야간자율학습을 끝내고 1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가슴통증과 두통을 호소하며 심근경색으로 교사로서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셨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0년이 훌쩍 넘어 긴 시간 만나지 못했지만 선생님의 8년이 어땠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성적표의 1점에 연연해하는 학생들에게 더 값진 것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셨을 것이다. 변명이지만 망각 때문인지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 때 절대 잊지 않겠다던 다짐을 오랜 시간 잊고 살았다.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과거의 제자에게까지 다시 한 번 '값진 수업'을 하고 가셨다. 다시는 다섯 대의 회초리의 아픔을 잊지 말아야겠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제 그곳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편히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선생의 영정을 마주하며
선생의 마지막 모습 앞에 헌화하며
선생의 영정 옆에 문화훈장을 놓으며
선생의 마지막을 기도하며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평생 생명에 대한 사랑을 외치시던 선생 앞에서
평생 우리 터전과 함께 살고자 하셨던 선생 앞에서
평생 땅이 품고 있는 삶의 본질을 놓치지 않길 당부하셨던 선생 앞에서
평생 자연 앞에서 겸손하고자 하셨던 선생 앞에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선생의 마지막 모습 앞에 선 그 순간
선생이 그토록 경외했던 이 땅이
당신에게는 여전히 경제, 효율, 개발, 발전, 성장을 위한 재물이었습니까?
진정으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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