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7.17 16:16

<한 여름 밤의 꿈> 장맛비에 낚이다.

<한 여름 밤의 꿈> 장맛비에 낚이다.


원작 : 윌리엄 세익스피어
번역, 연출 : 최형인
출연 : 김효진, 최진영, 안내상, 최용민, 김보영 외

 
확실히 비는 사람을 묘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뭔가 굉장히 큰 일이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전주곡... 그게 무엇일까 두려워 자꾸 안으로만 파고 들게 만드는, 숨을 죽이고 내리는 빗줄기와 빗소리를 그저 바라보고 들을 수밖에 없이 만드는 자성을 갖고 있기도 하다. '눈'과는 분명 다른 어떤 것이다. 눈은 소리가 없고, 촉각이 없다. 확인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시각 뿐이다. 하지만 비는 오감 전체를 자극한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고, 몸에 닿음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거칠고 강한 비일수록 오감은 크게 동요하고, 감정은 제멋대로 휘둘린다. 구멍난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장마... 장마가 되면 사람들은 그래서 가끔 이성이 아닌 철저하게 감정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된다.




14일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잦아들때쯤 다시 퍼부었고, 이제 그쳤겠거니 하는 생각에 뒤통수 맏기가 일쑤였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세상 소음 다 잡아먹는 빗소리만 듣고 있었더니 오감이 다 지친듯했다. 만나기로 했던 친구와의 약속도 빗줄기에 깨져버렸고, 그냥 집에 가면 한없이 까라질 것 같아 버스에서 내려 무작정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전시가 됐든, 공연이 됐든 아무거나 보자." 라는 생각으로...  우산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였고, 홀딱 젖은 걸음을 공연장에 들여놓자 <한 여름 밤의 꿈> 공연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8시 공연 시작.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남았다. 근데 매진이란다. 이 비를 뚫고 여기까지 이거 보려고 오는 사람이 이리도 많다니... 혹시 취소표가 나올 수 있다는 티켓박스 직원의 말만 믿고 기다리다 공연 시작 5분을 남기고 티켓 한 장을 손에 쥐었다. 세상에!!! 아무리 소극장이지만 사람들로 꽉차 있는 공연장을 보니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나처럼 그냥 집에 가기 싫어 한 평도 안 되는 우산에 몸을 맡기고 온 것 같았다. Great Korean!!!

어쨌든 장맛비에 낚여 계획에 없이 공연장을 찾았지만 마음은 좋았다. 소극장 공연이 오랜만이어서 반가웠고,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세익스피어의 희곡 작품이라서 더 그랬다. 편견이겠지만, 난 왠지 "오~~~" 로 시작해 뜻 모를 말만 마구 쏟아내는 클래식한 고전연극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날씨 탓이었는지, 기분 탓이었는지 (무대에서 처음 보는 작품이라서 예전 공연, 누구의 공연과 비교해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할 수는 없지만) 공연은 충분히 즐길만 했다. TV에서 낯익은 배우들의 연기가 무대에서 다소 이물감을 들게했음에도 여러 인물들이 많들어 내는 촌극에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세익스피어의 4대 희극이라고는 하지만 뭐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두고 공연을 본 건 아니었기에 부담감도 제로였다. Just Enjoy!!!

방향 감각을 잃은 연인들의 갈지자의 사랑. 오늘을 죽고 못사는 열정이 내일의 지긋지긋한 이별만 못한 것이 사랑이란 것이다. 그 변화무쌍함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세익스피어는 인간이 아닌 요정의 장난질 정도로 사랑을 생각했던 것 같다. 요정의 장난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제자리를 찾은 그들의 사랑도, 운명을 읊조리는 달콤한 말과 오감을 저리게 만드는 손짓들도 어쩌면 제목처럼 모두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것일 수 있겠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2시간 전까지만해도 땅을 파고 들어갈듯한 기세였던 빗줄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이것 역시도 요정들의 장난질이었을까 아니면 한 여름밤의 꿈이었을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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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4:19

제주도. 2009.7.3~7.5


기억도 가물가물한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12년만에 제주도를 찾았다.

용두암을 지켜봤고,
함덕해수욕장에 발을 담갔고,
성산일출봉을 올랐고,
섭지코지를 걸었고,
주상절리를 찾았고,
오설록 다원의 향을 맡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촬영장을 찾기 위해 한림읍 귀덕리를 기웃거렸고,
삼성혈을 돌아봤고,
성판악에서 출발해 한라산 정상에 발을 디뎠다.

절대 비리지 않았던 갈칫국,
담백하고 씹는 맛이 좋았던 둠베고기,
미역국 비슷했던 복말국,
내 입에 딱 맞았던 오분자기 해물 뚝배기,
짭쪼롬한 바다냄새가 났던 갈치조림,
여름 날씨와 어울렸던 물회,
무한리필 초밥와 상다리 휘어지는 쓰까다시가 일품이었던 도미회,
신선함이 무엇인가 보여준 오설록 녹차프라푸치노와 녹차케익,
5,000원이 믿기지 않았던 동네 백반집 정식,
한라산 등반 지킴이 김밥 2줄,
7시간 등반이 끝나고 뚝딱 해치운 국수 한 그릇,
차 안에서 이동하며 먹었던 이런저런 간식거리들...
모두 아직까지 침을 꼴깍이게 만든다.

중문 해수욕장의 제트보트는 황홀했고,
섭지코지의 말은 타고 있으면서도 좀 안쓰러웠고,
6명이 고작이었던 찜질방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았던 날씨에 고맙고,
세계자연유산 등재 2주년 기념으로 입장료를 받지 않았던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은 아싸!!!였다.

이 밖에 기록하지 못한 2박 3일의 2009년 제주도 여행...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제주도를 가기 전까지 구름 한 점, 바다 냄새 한 톨까지 고이고이 기억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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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3 10:30

<똥파리> 무쓸모의 존재감


<똥파리> 무쓸모의 존재감


Korea; 2008; 130min; Drama
Director: 양익준
Cast: 양익준, 김꽃비, 이환, 정만식


 
시간을 뛰어넘어 2009년 연말로 가서 한 해 영화계를 정리할 때, 그 리스트에 "독립영화의 약진"이라고 적어놔도 쉽게 이의를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워낭소리>가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잭팟을 터뜨린 이후 <낮술>, <할매꽃> 등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여름의 시작과 함께 또 한 편의 독립영화가 수상한 세를 모으고 있다. 연이은 국제영화제 수상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극장 개봉에 성공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그 주인공.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감독, 각본, 주연까지 혼자 1인 3역을 도맡은 신인 감독의 영화에 쏠리는 관심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제목부터 범상하지 않다. 여름이면 모기와 함께 찾아오는 무쓸모의 양대산맥이 "똥파리"다. 과연 영화 <똥파리>는 어떤 존재감을 갖고 있을까? 여러가지 기대감으로 극장을 찾았다. 영화가 시작하고 2시간 10분이 지나서 다시 상영관에 불이 들어왔다. 다소 긴 러닝타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스토리는 흥미로웠고, 구성은 찰졌다. 짧게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우리 이전 세대 아버지들의 권위주의적 폭력에 '안녕'을 고하는 영화"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친 제목과 달리 영화는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다. 감독의 자기고백적 느낌이 강하지만, 누구나 한 번 쯤 품었을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왠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폭력의 시작

늦은 밤, 한적한 동네 사거리에서 한 남자가 여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질을 하고 있다. 잠시 후 상훈이 앵글 안으로 들어온다. (상훈은 '주먹'을 통해 처음 영화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남자는 상훈에 의해 폭력의 가해자에서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 폭력에 더 큰 폭력으로 남자를 응징한 상훈에게서 관객들은 묘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상훈은 돌아서 매를 맞던 여자에게 뺨을 날리고 침을 뱉는다. 방금 전의 쾌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남은 건 짜증과 멸시에 찌든 상훈의 표정 뿐이다. 그 표정에서 연민과 동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똥파리>의 첫 장면, 감독은 폭력의 변이를 파노라마가 이어지듯 보여준다. 첫 시퀀스로 똥파리 상훈의 캐릭터에 대한 모든 설명이 끝이 난다. 상훈은 보통 사람이 가진 평범한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과 표정을 갖지 못했다. 그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폭력'이다. 이 후의 영화는 그가 가진 폭력이 어떻게 체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몇 번의 플래시백을 통해 드러나는 상훈의 폭력은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특히 아버지는 상훈이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배설하는 욕설과 폭력의 실체가 된다. 약한 어머니에게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고, 그 와중에 어린 여동생을 죽인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것이다. 동시에 상훈의 폭력에는 가해자였던 아버지만큼이나 피해자였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함께 얽혀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매맞는 여자를 대한 상훈의 태도는 "속수무책으로 맞고만 있었던 어머니"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상훈은 어머니에게 피해자로서의 연민과 어린 자신과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원망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상훈의 폭력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와 여동생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아버지에 대한 분노,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그가 아버지보다 더 큰 폭력을 갖게 된 것은 - 어머니와 같은 약한 존재가 되어 또 다른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겠다는 - 삶의 궤적이 만들어준 그만의 삶의 양식(a way of life)이다. 


더불어 <똥파리>는 지극히 감독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을 하고 있지만 '폭력'에서 사회적 맥락을 제거하지 않는다. 솔직히 <똥파리>를 보고 있으면 몇몇 장면에서 가난을 폭력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상훈과 영재의 가족이 속한 도시의 빈민촌은 지난한 가난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 곳에서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이, 부모에 대한 자식의 폭력이, 형제를 향한 다른 형제의 폭력이, 이웃을 향한 이웃의 폭력이 '가난'을 이유로 이뤄진다. 또한 영재가 가난을 벗어나고자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 깡패가 되는 모습에서는 가난의 되물림이 폭력의 되물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약 이렇게 가난과 폭력을 등호의 관계를 놓고 영화가 이야기를 끝까지 이어갔다면 <똥파리>가 가진 윤리성은 심각하게 훼손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양익준 감독은 가난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위기를 돌파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가난하지만 '필사적'으로 그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가난의 굴레에서 한 걸음도 도망칠 수 없다. 그것은 가난이 이미 개인의 능력을 벗어나 사회적 구조 속에서 무한 반복되기 때문이다. 연희의 어머니가 할 수 있는 건 구청직원들에게 언제 헐릴지 모르는 포장마차였고, 그의 딸 연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급 몇 천 원의 떡볶이집 아르바이트가 고작이다. <똥파리>는 가난이 폭력이 뿌리내리기 쉬운 토양을 제공하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가난한 사람이 폭력적 사람이 된다는 논리로 환원하지는 않는다. 
 
연희의 아버지는 폭력이 가진 사회적 맥락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가를 위해 전쟁(베트남전)에 참여했다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그는 국가로부터 버려진 인물이다. 얼마 정도의 보조금을 받고 있지만 한 가정을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노동력을 상실한 그는 곧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방기하고, 남자로서의 기능을 거세당한다. 그가 끊임없이 아내를 의심하고, 가족을 폭력으로 대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남자' 임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엄청난 국익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로 국가는 생면부지 전쟁터로 젊은이를 보냈고, 다시 돌아왔을때 국가로부터 소외 당한 참전용사는 고스란히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폭력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들을 통째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닌 온전히 가족의 몫이 되었다. 결국 <똥파리>가 보여주는 폭력의 실체는 사회사와 개인사가 복잡하게 얽힌 결과물인 것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결과물... 영화 포스터의 카피처럼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닐지언정 그 감정만큼은 보편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폭력의 확대

영화 <똥파리>에서 아버지들(연희의 아버지와 상훈의 아버지)은 한국의 권위주의 시대에 가족에게 자행된 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버지들로부터 출발한 폭력은 이후 세대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오히려 더 확대된다. 폭력은 그 폭력을 누를 수 있는 더 큰 폭력을 야기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상훈의 아버지가 행하는 폭력이 가족의 틀 안에 있었다면, 상훈의 폭력은 아버지의 폭력을 방기한 세상을 향해 있다. 그의 폭력은 성별은 물론이거니와 적(敵)과 아(我)를 가리지도 않는다. 나이까지 경계가 없는 듯 보인다. 심지어 경찰로 상징되는 공권력에게까지 그의 폭력은 거침이 없다. 연민과 동정과 같은 감정은 애초에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분노 뿐이다. 그가 하는 말은 욕이고, 그가 하는 행동은 폭력이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상훈은 '언어 이전의 인간'인 것이다. 또한 등록금 시위현장에서 보듯 그의 폭력은 윤리와 도덕 이전의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폭력을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 용역깡패가 고작이다. 


또 다른 상훈, 영재가 있다. 상훈처럼 불운하게 어머니를 잃고, 가장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 둘에게 아버지는 공히 분노와 원망의 대상일 뿐이다. 똑같이 마음을 쓰게 만드는 누나가 한 명을 두고 있는 점도 닮아 있다. 하지만 상훈의 폭력이 세상 밖으로 거칠게 표출되는 반면에 처음 영재의 폭력은 가정 내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 상훈은 아버지와 누나에게 절대적인 폭력을 행사하지만 밖에서 그렇지 못하다. 친구 승훈을 따라나선 용역 현장에서 영재는 지금까지 경험으로 감당하기 힘든 폭력(상훈)을 마주한다. 그리고 영재는 그의 앞에서 우물쭈물한다. 하지만 그 주저함은 껍질을 벗고 더 큰 몸을 얻기 위해 몸부림 치는 파충류의 변태 과정과도 닮아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영재는 더 큰 폭력을 물려받는다. 영재는 다른 용역들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영화의 마지막, 영재는 자신의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상훈에게 충동적으로 막무가내 폭력을 휘두른다. '절대적인 폭력'이라고 믿었던 상훈의 약한 모습은 순간적으로 약자와 강자의 위치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영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영재는 상훈을 제거함으로써 그보다 강한 폭력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들의 폭력은 상훈을 통해 다시 영재에게로 확대, 전이된다. 결국 상훈과 영재는 한국의 근대사(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만든 폭력의 결과물인 셈이다.

폭력의 소멸


영화의 전반부가 상훈을 중심으로 한 폭력의 전이를 보여주고 있다면, 후반부는 치유의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치유의 파동이 시작되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가족'이다. 아마도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핵심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치유는 생채기가 생긴 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것... 가벼워지기 위해서는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상훈의 아버지와 상훈이 행하는 폭력의 차이점은, 아버지 폭력의 피해자가 오직 가족이었던 반면 상훈의 폭력은 가족을 제외한 모든 세상을 향해 있다는 것이다. 상훈에게 가족은 그토록 없었으면 하면서도, 그가 간절히 욕망하는 대상이었다. 15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세상에 나온 아버지에 대한 상훈의 무자비한 폭력은 자신에게 온전한 가족을 만들어주지 못한 원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가 아버지가 없는 동안 배다른 누나(현서)와 그의 자식(형인)을 돌봤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가 그토록 증오하는 아버지씨의 씨를 타고났지만 상훈은 현서와 형인에게서 희미하게 남아있는 가족의 흔적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표현이 거칠고 어설프지만 말이다. 

가족을 향한 상훈의 한 걸음은 만식과 연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훈보다 네 살이나 많은 만식은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그의 유일한 친구이다. 세상과 이리저리 치받으며 결국에는 스스로 상처를 내는 상훈을 마음 쓰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만식은 아파하는 걸 알면서도 상훈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계속 상기시킨다. 아마도 상훈이 가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이다. 그리고 연희가 있다. 우연히 만난 이 겁없는 고3 소녀는 상훈에게 죽은 어머니이자 여동생, 구원자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상훈 만큼이나 복잡한 가정사를 가진 연희 역시 가정과 학교 어느 곳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상훈은 단 한 번 크게 웃고, 단 한 번 크게 운다. 항상 연희가 그 옆에 있었다. 연희 역시 상훈과 같이 웃고, 같이 눈물을 흘린다. 연희를 통해서 상훈은 타인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 둘은 질척거리는 가정사를 주저리 떠들지 않아도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상훈은 다시 가족을 용기내본다. 조카의 유치원 학예회에 상훈을 통해 탄생한 '가족'이 모인다. 여기서 감독은 가족을 굳이 혈연으로 뭉친 1차집단으로 한정시키지 않는다. 이미 <다섯은 너무 많아>, <가족의 탄생>에서 전복적으로 그려낸 가족의 탄생은 <똥파리>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상훈의 아버지, 현서, 형인, 만식, 그리고 연희까지... 이들에게는 '가족'이라는 타이틀도 붙지 않았고,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이라는 역할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 지붕 아래 모여 살지는 않지만 그들은 '가족'을 이루며 산다. 각자는 그 안에서 그저 서로를 보듬고 배려하는 동등한 구성원일 뿐이다. 감독은 근대적 가족이 가진 편협한 정의를 거부하고 타인에게까지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연희와 영재 남매가 슬프게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영재의 존재는 분명 한 번 전이된 폭력이 쉽게 없어질 수 없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연희를 통해 영재가 확대된 개념의 가족 공간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영재 역시 상훈 만큼이나 건강한 가족을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응당 해야할 일이다. 폭력은 개인과 가정의 테두리에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여기서 상훈의 위치는 어디일까? 감독은 상훈에게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상훈의 아버지가 거세된 폭력이라면, 상훈은 살아있는 폭력을 의미한다. 곧 그의 죽음은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폭력의 마침표이자, 권위주의 시대 폭력의 종결인 것이다. 힘이 가득 들어간 '주먹'으로 영화 속에 들어온 상훈은 숨이 떨어진 그 손을 마지막으로 영화를 떠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에서 톰(비고 모르텐슨)의 가족은 폭력의 실체를 알면서도 침묵한다. 그 침묵은 엄청난 폭력을 묻어두고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상징이다. 하지만 <똥파리>는 상훈의 죽음을 통해 남은 자들에게 온전한 평화를 선물하고자 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는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똥파리는 없어졌다.  
 


솔직히 <똥파리>의 모든 감정들이 이해되고, 모든 인물을 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의 화해와 용서에 어느 정도의 물음표가 남는 것도 사실이다. 표현 방법에서도 여러 장르의 클리세들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부족함에도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것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뜨거운 '진심'에 있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난 누구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만든다." 는 말을 했다. 그 만큼 <똥파리>는 한 컷, 한 컷에서 감독의 진한 인생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사변적이지 않고 그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는 이유는 처음에 얘기했듯이 상훈의 이야기가 특별할지언정 그 메시지는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 인한 갈등과 그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극복하기까지 한 개인이 겪는 감정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보편적이다. (영화의 엄청난 수상 성적을 봤을 때 서양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녹여내 영화로 풀고 있다. 그리고 감독은 메마르고 황량한 현실에서도 감히 희망을 얘기한다. 또한 그것이 이뤄질 거라고 믿는다. 양익준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그 진심이 스크린에 그대로 묻어난다.


P.S. 1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스토리의 재미와 구성의 탄탄함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적재적소에서 터져주는 유머와 배우들의 군더더기 없는 연기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 듯 하다. 인물들이 뱉어내는 대사는 특히나 찰졌고,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려냈다. (개인적으로 콘프레이크를 먹는 채무자 장면과 만식의 대사들이 인상적이었다.) <똥파리>를 배우들의 발견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양익준은 감독, 각본, 주연까지 충무로의 좋은 영양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꽃비, 이환, 정만식까지 벌써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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