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9 20:44

막돼먹은 영애씨

막돼먹은 영애씨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공중파의 재방송이나 보겠다는 마음으로 케이블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다. 애초 야심 차게 출발했던 케이블 채널들이 철 지난 공중파의 드라마나 버라이어티로 편성표를 가득 채우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흐릿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편성의 부실함과 시청자의 관심 저하라는 두 축이 악순환을 계속하는 상황 속에서 정부는 정책적으로 케이블 사업자의 수익성을 보장하기 많은 규제를 풀어주었고, 방송사는 외국의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쇼를 집중 편성하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돌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더 이상 공중파의 주변부가 아닌 독립적인 미디어로서 케이블 방송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비율을 높여가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 그 자체 제작 프로그램의 중심에 있는 것이 사람들이 ‘케이블 드라마’라고 명명한 새로운 장르이다. 아직은 공중파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빗겨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접한 공중파와 다른 재료와 맛을 가진 새로운 영역에 다수의 매니아들을 시작으로 천천히 반응을 보이고 있다. <로맨스 헌터>. <썸데이>. <하이에나>와 같이 세련된 방식으로 솔직하고 깔끔하게 이야기를 풀었던 드라마들이 상당한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 사실이고, 최근에는 코믹, 공포 등과 같은 공중파에서는 선보이기 어려운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케이블 드라마들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면서 채널들 간의 경쟁 역시 치열해지고 있다. 공중파 못지 않게 채널 간 동 시간대 드라마 편성이 화제가 되고, 드라마 내적, 외적 부분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캐스팅과 내용으로 타사의 드라마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경향이 가끔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편성을 만들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질적 성장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질적 성장의 열매로 시청자들이 맛있게 즐길 수 있었던 작품이 얼마 전에 시즌1을 끝낸 TvN의 ‘막돼먹은 영애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답고 고상하고 단아한 여성 이미지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배우 이영애에 대한 음흉한 메타로를 타이틀로 내세운 이 다큐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가 시청자들의 눈에 보기 좋게 연착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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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막돼먹은 영애씨의 환상적인 연착륙의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이 드라마를 잘 뜯어보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요소들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혼합하면서 앵글은 어색해졌고 화면 질감은 시청 욕구를 떨어뜨릴 정도로 불편해졌다. 출연 배우 역시 살집은 풍부하되 미모는 부족했던 출산드라 김현숙을 타이틀롤로 내세웠고 그 외의 중요 인물 역시 이름과 얼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캐스팅이었다. 그럼에도 ‘막돼먹은 영애씨’가 시즌2를 결정할 만큼 성공한 요인을 찾는다면 그 첫째는 기존 신데렐라 스토리의 여성 캐릭터에 대한 막돼먹은 전복에 있다. 솔직히 예쁘고 몸매 좋은 여배우를 능력 없는 노처녀로 앉혀놓고 부잣집 도령과 연애 스토리를 풀어가는 전형적인 공중파와는 달리 ‘막돼먹은 영애씨’는 분명 다운그레이드 된 여성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 서른의 영애는 정말 정육점에 전시될만한 몸매를 가진 동네 광고회사에서 전단지와 현수막을 만드는 직원이자, 아리랑치기, 지하철 변태, 주정꾼 등에게 예의 있는 욕설과 폭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막돼먹은 여성이다. 그녀와 핑크빛 로맨스를 엮어가는 연하남은 족발집 사장 아들 자격으로 영애의 회사에 낙하산으로 취업한 능력은 없고 성격만 좋은 도련님일 뿐이다. 영애의 원준에 대한 사랑은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안쓰럽고 처량할 정도로 일방통행이다. 그들의 연애는 화살표가 사방에서 넘나드는 기존 드라마와 달리 영애의 구걸과 원준의 허락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더불어 영애의 엄마, 영채, 나영, 지원 등 그녀를 둘러싼 여성들 역시 우리가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집, 학교, 회사,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그녀들의 일과 사랑,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다큐드라마라는 새로운 형식과 유머와 위트가 적절히 조화된 스토리에 아주 담백하게 조화된 것이다.

 

하지만 ‘막돼먹은 영애씨’의 매력은 비단 여성 캐릭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가 분명 ‘여자’들의 시선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카메라가 스치는 남성 캐릭터 역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드라마의 남성 캐릭터는 우선 아버지와 아버지가 될 인물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영애의 아버지와 회사의 사장을 전자로 묶는다면 과장, 원준, 서현, 혁규, 영민 등은 후자의 영역에 둘 수 있다. 전직 영어교사라는 프라이드를 갖고 있지만 현재 생활력은 전무한 영애의 아버지와 아내와 자식을 호주로 유학 보낸 기러기  아버지는 이제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남성이라는 타이틀을 얻는 순간부터 구조가 되길 강요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의 안위를 책임질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 그들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와 다른 것은 그들이 아버지 세대의 위엄과 더불어 이후 세대의 남성에게 필요한 포용력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될 다음 과도기 세대의 남성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숙제이다. 긴 시간 동안 남성들 자신이 쳐놓은 담론을 스스로 파괴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서현을 비롯한 다음 아버지 세대들의 상황은 더욱 혼란스럽다. 아직은 구조로 작동하길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스스로 그 구조를 풀어야 하는 이중의 압박이 그들에게 역할갈등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 혼란들이 ‘막돼먹은 영애씨’의 남자들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지원에게 애틋한 마음을 두고서도 끊임없이 마초의 습성을 상기시키는 서현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도의 철학 세계에서 부유하는 니트족 혁규, 그리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며 철없는 일탈을 즐기는 영민의 모습은 그 나잇대의 남성들이 경험해 봄직한 고민과 상황들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 싸잡아 속물이라고 묶어버릴 수 있는 드라마 속의 남성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것이 전혀 드라마 속 상황이 아닌 현실에서 틀의 안과 밖에 어색하게 양다리를 걸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 주변 남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막돼먹은 영애씨’가 여성 시청자뿐만 아니라 남성 시청자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이유이다.

 

결국 여성의 관점에서 세상의 막돼먹음을 통쾌하게 그려낸 ‘막돼먹은 영애씨’는 예의 없는 남성에 대해서는 가감없는 영애의 폭력과 욕설을 허락하면서, 그녀의 주변 남성들에게는 따뜻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는 영리한 드라마이다. 때문에 칫솔, 토스트 등으로 소심한 복수를 실천하는 영애와 지원의 일상과 속물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남자들의 이중 생활이 모두 측은하면서 사랑스러운 이유이다. 아마도 시즌2에서는 영애와 원준, 지원과 서현, 나영과 영민, 그리고 영채와 혁규의 로맨스가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듯싶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공중파의 드라마나 시트콤에서 눈이 헐도록 보아온 사랑이야기보다는 시즌1에서 보여준 것처럼 삶의 다양한 군상들이 겪을 수 있는 고민들을 보다 유쾌하고 막돼먹게 그려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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