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09 21:52

아내가 결혼했다

점에서 이 책 저 책 기웃거리며 죽이는 시간이 아까울 때 좋은 방법 하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정하고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야금야금 읽어가는 것이다. 궁금하다고 해서 사서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은 금물, 반드시 서점에서 남의 책을 손 때가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읽어야만 한다.

약간의 지루함이 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누릴 수 있는 헤택이 많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서점에서 할 일을 만들 수 있고, 누구를 기다리거나 약간의 시간이 허락할 때는 어디갈까 고민하지 말고 근처의 아무 서점에나 들어가 그 책을 집어들면 된다. 물론,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 역시 더 높일 수 있다. 통독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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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한 권을 털어버렸다. 2006년 최고의 화제작이라던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00년대 소설 흐름의 정점에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무겁게 질척거리던 역사에서 힘겹게 벗어나고 주변 여기저기서 돈의 흔적들이 뒷덜미를 뻐근하게 만들 때쯤 출판계 역시도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다. 계몽의 기름기와 역사의 무게를 걷어내고 S라인 슬림한 바디라인으로 텔레비전, 영화 등 화려함에 눈을 담보맡긴 사람들의 시선을 되돌린 것이다.

이런 흐름에 스타작가는 필수적이다. 대중의 구미에 착착 감기는 소재와 표현으로 무장한 신세대 작가들의 작품들은 러닝머신를 거쳐 시장에서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분명 시장의 측면에서도, 문학의 측면에서도 이들의 공은 치켜세울만하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박현욱 역시 흐름의 선두에서 누구보다 큰 날개짓을 하고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시의적절한 주제(결혼제도)와 뜨악할만한 소재(아내의 결혼), 흡입력있는 구성(축구), 그리고 기름기를 완전 제거한 고단백의 표현들은 독자들이 쌍수를 들게 할만 하다.

선수와 전략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본경기 역시 뒤쳐짐이 없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내의 남편의 삼각구도에 독자를 끌어들여 2:2(나, 주인공 : 아내, 아내의 남편)의 아슬아슬한 줄을 태우고, 순간 정신을 차리면 '너도 어쩔 수 없어~~~'라는 작가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아 흉부의 어느 한 곳을 뜨끔하게 만들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쉽게 넘길 수 없는 주제를 던져주는 본재료와 양념이 입맛에 맛도록 잘 요리된 책이다.

하지만 <아내와 결혼했다>와 같은 최근의 책들을 보며 반가운 생각만이 드는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문화의 흐름에 주제보다는 표현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물론 부정적인 현상만은 아니다. 몇백년, 몇 천년간 주제의 무게에 억눌려 있던 표현의 자유가 숨쉴 공간이 생기면서 다양성이 확대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음악과 미술이 시대를 얼마나 잘 누리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 역시 즐겁지 않은가... 하지만 개인적으로 문학은 예외로 남았으면 한다.

문학은 다른 분야와 다르게 언어(말)를 수단으로 하는 분야이다. 말의 힘이라는 것에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의 작가들이 대중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톡톡튀고 재치있는 표현에 치중해 주제의식을 상실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참, 고루하시군요.'라고 한다면 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과거 어두웠던 역사를 가진 시대의 작가들이 무겁게 짊어져야 했던 십자가를 지금의 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지금은 과거와는 다른 주제들이 있고, 그들은 그것들을 찾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거칠게 정리를 해보자면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지 않는 작가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어려운 얘길 많이 한 듯 싶지만. 결국 <아내가 결혼했다>는 주제와 표현이 잘 버무려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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