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25 08:00

국회 <곧, BYE! 展>의 '더러운 잠'에 대한 소고...

국회 <곧, BYE! 展>의 '더러운 잠'에 대한 소고...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더불어민주당에게 쏟아진 칭찬 중에 하나는 소속 의원들이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눈물을 흘린 의원들도 있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4년 내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억지와 만행을 참아낸 그들이었기에 어찌보면 약간의 환호가 허락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웃지 않았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그 정치적 무게감과 이후 과정을 준비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회 밖은 달랐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해방을 맞은 듯 그들의 기쁨을 무한대로 쏟아냈다. 그리고 시민들은 충분히 기뻐할 자격과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국회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를 향한 예술가들의 풍자 연대'의  '곧, BYE! 展'을 둘러싼 논란을 보며 국회 안과 밖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문제가 되었던 풍자화 '더러운 잠'이 박근혜의 여성성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 희화화 한 것이지 아닌지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나의 창작품을 두고 갑론을박 하는 것은 '블랙리스트' 없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건강한 사회에서 시민들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전시가 개최된 공간이 '국회'라는 점이다. 나는 이 전시가 국회 안이 아닌 국회 밖 (예를 들어 광장) 이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물론 고관대작들이 아랫 것들 멀리 물리고 나랏일 결정하는 성역과 같은 공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앞서도 언급한 그 정치적 무게감과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국면에서 국회의 역할은 탄핵안 가결과 7차례에 걸친 국정조사로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검찰에 이어 특검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각기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후 국회의 역할은 수사와 판결의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최대한 정치적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수사와 재판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합의가 형성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 국회의 역할은 박근혜 정부 4년간 축적된 적폐들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입법의 통과와 이후 대선과 같은 정치 과정에 대한 고민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국정농단의 주연들을 향한 정치적 배설은 국회 밖 광장에 양보하고, 블랙리스트로 인한 예술인들의 상처와 분노를 치유할 수 있는 제도와 법률을 마련하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망한 욕설과 희화화로 가득 채웠던 연극 '환생경제'를 기억한다. 대학로 어느 소극장의 극단 배우들이 대통령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연극이 아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직업 배우로 출연하면서 아직까지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통령 때문에 경제가 파탄났다고 주장하면서 직접 무대 위에 올라 대통령을 향해 육두문자를 쏟아내는게 국회와 국회의원의 역할인가? 분명 아니다. 환생경제에 비하면 티끌과 같은 문제일 수도 있지만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중요한 국면이다. 행정부가 무너진 상황에서 입법부에 대한 신뢰만큼은 지켜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예술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은 다릅니다. 예술에서는 비판과 풍자가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품격과 절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문재인 전 대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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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3 14:29

<무뢰한> 남자를 성장시키는 여자, 여자를 파괴시키는 남자

<무뢰한> 남자를 성장시키는 여자, 여자를 파괴시키는 남자 

Korea; 2015; 118min
Director: 오승욱
Cast: 전도연, 김남길, 박성웅, 곽도원

 

영화 ‘무뢰한’은 장르로서 하드보일드 느와르의 뼈대를 가지고 있지만 한 남자의 성장이야기에 가까운 듯하다. 감정에 인색하고, 소통에 젬병인 이 남자의 성장은 그를 스쳐간 여성들을 통해 이뤄진다. 재곤에게 몹쓸 취조를 당한 여인, 그의 전처, 황충남의 부인, 김혜경,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피를 흘리는 여인까지 그를 스쳐간 여인들은 유무형의 흔적을 그에게 남긴다. ‘기억하기 싫은 상처들’이겠지만 그 관계들은 재곤이 아주 천천히 자신이 가진 감정의 결들을 알아채고, 타인을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사건’들이기도 하다. 황충남 부인의 페디큐어는 정사 중인 혜경의 붉은색 매니큐어와 연결되고, 김혜경이 가진 손목의 상처는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여인의 것과 맞물린다. 어찌 보면 재곤에게 이 여성들은 각기 다르지만 같은 혹은 연결된 의미를 가진 타자일 수도 있다.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던 재곤이 혜경을 상대로 시작한 게임은 처음부터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혜경과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그는 정재곤과 이영준의 경계에서, 참과 거짓의 경계에서, 사랑인지 뭔지 모를 감정의 경계에서 다른 차원의 질척이는 싸움에 직면해야 했다. 그는(재곤이든 영준이든) 오롯이 혜경을 사랑했을까? 아니면 끝까지 그녀를 이용하고자 했을까? 영화는 양쪽 모두에 대한 단서를 던지며 관객마저도 그 질척이는 감정의 싸움판으로 끌어들인다. 확실한 것은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갈팡질팡하던 재곤에게 혜경은 또 하나의 기억하기 싫은 상처가 되겠지만 그 상처를 통해 남자는 다시금 느린 걸음의 성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피를 흘리는 피해자 여성에게 자신의 옷을 덮어 줄 수 있는 딱 그 만큼만.

이 남자의 맞은편에 김혜경이 있다. 느와르라는 장르적 한계 속에서도 굳건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는 이 여성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혼자서는 온전히 서 있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녀를 삶의 바닥까지 끌어내린 것은 남자들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남자를 통해(손님들), 남자에 기대(박준길) 삶을 이어간다. 그런 혜경이 남자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할 때, 직업이 남긴 흔적이겠지만 그녀는 습관적으로 남자의 성기를 목표로 한다. 준길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할 때도, 민 상무의 협박을 달래고자 할 때도, 밀린 외상값을 받아내기 위해 남자를 으를 때도 혜경이 상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남자들의 성기였다.

하루 종일 남자들과의 처절한 싸움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돌아온 집에서 혜경은 처음으로 재곤의 성기를 반복적으로 만진다. 재곤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감정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혜경의 이 행동은 언뜻 준길의 말대로 영준에게서 돈을 얻어내기 위한 전략처럼 보인다.(영준은 그녀의 손을 잡아 그의 가슴 위에 놓는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과 달리 영준에게 뱉는 말들에 거짓은 없다. 같이 살자는 영준의 말이 그녀는 분명 진심이길 바랐다. 그에게 기대 새로운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찰나의 희망이 그녀의 얼굴에 스쳤다. 혜경은 영준을 진정 사랑했을까? 아니면 그녀 역시 그를 이용하려고만 했을까? 그녀의 행동과 말 모두 재곤처럼 그 사이 어딘가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혜경과 재곤 모두 감정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 했지만 맡은 바 역할에 충실했다. 재곤은 박준길을 잡는데 성공했고, 혜경은 영준으로부터 돈을 얻어 준길에게 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재곤이 여성들의 관계를 통해 조금씩 성장했던 것과 달리 혜경은 남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욱 처절하게 파괴된다. 그녀를 거쳐 간 숱한 남자들이 그녀를 파괴했듯 재곤 역시 그녀를 파괴시킨다. 박준길의 죽음은 재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녀를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그 나락에서 재곤의 등장은 그녀를 또 (빚을 갚기 위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을 만들었다. 재곤의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알리가 만무한 혜경은 재곤에게 다른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재곤은 이 상처를 기억하지 않음으로 그녀를 흔든 대가를 치렀다고 믿을지 모른다. 더디게 성장하지만 재곤은 여전히 감정에 서툴고 방법에 배려가 부족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재곤의 말은 진심일지언정 혜경에게는 공허하다. 영화의 마지막 재곤의 얼굴 위로 겹치는 ‘무뢰한’은 다름 아닌 혜경의 울부짖음일 수도 있다.

여자를 통해 성장하는 남자와 남자를 통해 파괴되는 여자의 등장은 장르 영화로서의 느와르의 공식에 대한 일종의 전복으로 보인다. 느와르 속의 팜므 파탈로 상징되는 여성의 캐릭터는 완전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듯 보이는 남성을 철저하게 파괴시키는 인물이었다. 하지만‘무뢰한’의 여성은 무너진다. 승자처럼 보이지만 남성의 성장 역시 극도의 고통을 동반한다. 이러한 변주는 결핍된 인물들이 엮어내는 극의 비장미를 더욱 짙게 만든다. 모든 것을 갖춘 듯한 남녀가 속고 속이는 게임을 벌이다 클라이맥스를 거쳐 한쪽은 모든 걸 얻고, 다른 한쪽을 모든 걸 잃는 장르의 전형성은 감정에 서툴고 나약한 무뢰한 속 인물들의 비극과 어울리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무뢰한’은 장르로서 느와르를 표방하지만 인물, 구성, 이야기 등 어느 것 하나 고정적인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는다. ‘하드보일드 멜로’라는 타이틀을 붙이긴 했지만 이 영화를 어느 한 장르에 묶어 놓는 것은 영화가 가진 엄청난 상징과 은유를 오독하거나 놓칠 수 있는 행위이다.

선인지 악인지 모를 인물들, 사랑인지 뭔지 모를 인물들의 감정,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표정, 행동과 말, 해질 무렵인지 새벽인지 모를 시간... 이 모든 것들이 결합되어 ‘무뢰한’의 매 순간은 의미의 범람을 일으킨다. 봉준호의 말마따나 그래서 ‘무뢰한’은 ‘영화다운 영화’다. 소설이 아닌, 시가 아닌, 영화.

그나저나 전도연은 ‘another level’이 아니라 ‘beyond lev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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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14:53

세뼘왕자's CHOICE in 2009


세뼘왕자's CHOICE in 2009




<한국영화>

1. 마더 : 2000년대 한국영화의 중심에 선 감독, 다가오는 10년대 역시 그 중심의 역할을 놓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증명하다.
2.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점점 하나로 덩어리지는 그의 영화, 그 덩어리가 어떤 모습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빠져든다.
3. 차우 : 누가 뭐라든 올해 최고의 괴수, 오락영화
4. 불신지옥 : 한국 호러의 질긴 숨통은 결국 2009년 이 영화를 만들어냈다.
5. 호우시절 : 언제나 기본은 하는 허진호, 죽은 배우 되살려내기 1인자 허진호
    어떤 개인 날 : 꼭 이렇게 만들어졌어야 할 그녀들의 솔까말

< 외국영화>

1. 그랜 토리노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개인적 체험'이 시대를 아우르고 세대를 뛰어넘어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엘라의 계곡 : 이라크전을 부지런히 영화화하기 시작한 헐리우드. 이제서야 헐리우드도 제대로 된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3. 바더 마인호프 : 역사를 기록, 기억하는 영화들이 반드시 보고 배워야 할 감독의 자세
4. 24시티 : 3대를 어울러 시대를 관통한다. 중국의 현대사를 오롯이 담아내다.
5. 더 리더 : 매너리즘에 허덕이던 홀로코스트 영화가 새로운 미답지를 열기 시작했다.
    번 애프터 리딩 : 코엔 형제가 완벽하게 부활했음을 보여준다.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New Coen's world

<올해의 영화제 영화>

1. 더 클래스(메가박스 유럽영화제) : "무엇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어떻게" 말하는 가도 중요하다.

<올해의 다큐멘터리>

1. 워낭소리 : "송환"이 질적으로 한국 다큐를 끌어올렸다면 "워낭소리"는 양적으로 최대치를 이뤄냈다.

<올해의 독립영화>

1. 똥파리 : 무쓸모의 존재감, 거칠어도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올해의 애니메이션>

1. UP : 재주 많은 미스터 폭스도 풍선달고 하늘 나는 집보면 두 손 들 듯...

<올해의 재상영>

1. 알제리 전투(재개봉이 맞나?) : 40년이 넘어 전설을 확인하는 벅참.  




<올해의 뮤지컬>

1. 스프링 어웨이크닝 : 재미없다면 현실이 그럴 것이고, 우울하다면 현실이 그럴 것이다.

<올해의 전시>

1. 카쉬전 : 프레임이 기록한 인물과 시대, 그리고 분위기에 취하다.

<올해의 콘서트>

1. 빅뱅 콘서트 : 아이돌 콘서트를 급습한 29살 청년의 무아지경

<올해의 연극>

1.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제 1권 : "본다는 것"의 새로운 정의를 이끌어 낸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 전수경, 최정원, 이경미의 말 그대로 "버자이너 모놀로그"
    39계단 : 히치콕의 미스테리가 유쾌한 코디미로 다시 태어난다. 이 쯤해야 '전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듯

<올해의 드라마>

1. 선덕여왕 : 모처럼 만에 만나는 웰메이드 정치 드라마. "선덕여왕'은 앞으로 나올 드라마들의 원형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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